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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직, 안전 사각지대…"산재 신청은 '그림의 떡'"

입력 2016-06-06 11:11

"회사가 공상처리 유도…개인질병 핑계로 거절도"
"다단계 하청이 사고 키워…원청 책임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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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공상처리 유도…개인질병 핑계로 거절도"
"다단계 하청이 사고 키워…원청 책임 강화해야"

건설 일용직, 안전 사각지대…"산재 신청은 '그림의 떡'"


건설 일용직, 안전 사각지대…"산재 신청은 '그림의 떡'"


"산재(산업재해) 처리요? 우리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괜히 신청했다가 찍히면 다음엔 일을 못잡아요. 동료들 중엔 산재 신청을 했다가 회사가 의료기록을 요구해 제출했는데 결국 거부당한 경우도 있어요. 그럴 바엔 그냥 안하는 게 낫죠."

6일 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들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이 생겨도 산재 보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입지만 정작 제도적 울타리에선 한 발 비껴나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 업무를 대부분 담당하는 만큼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지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2013년 여수 화학공장 사고, 2014년 당진 제철공장 가스 질식사고, 지난해 이천 반도체공장 질소가스 누출사고와 울산 화학공장 폭발사고, 그리고 최근 발생한 구의역 사고와 남양주 공사장 붕괴사고 등의 피해자들도 용역업체 직원과 하청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건설업계의 다단계 하청 구조 때문에 작업 중 부상을 입어도 아예 산재 신청을 못하거나 회사로부터 거절당하기 일쑤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간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산재를 당한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 중 산재보험으로 처리된 경우는 20.3%에 불과했다. 과반인 58.2%는 고용주가 공상처리했다. 개인 의료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도 19.0%에 달했다.

산재보험 처리하지 않은 이유는 '눈치가 보여서'(32.4%)와 '고용주가 말려서'(16.2%) 등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았다. '절차가 귀찮거나 복잡해서'라는 응답은 25%였다.

산재 신청을 한 경우에도 자신을 고용한 업체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선 경우가 31.4%였다. 업체에 신청했을 때 의무기록을 요구받은 경우는 14.3%였고 이 중 디스크와 골절 등 개인 질병으로 거부당한 경우가 23.3%나 됐다.

이는 하청업체가 '공식'적인 산재 사고가 많으면 원청업체와의 계약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원청업체들은 이를 토대로 벌점을 주거나 '3진 아웃제', '투 아웃제'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한 일용직 근로자는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의 평가를 받아야 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암묵적으로 근로자에게 공상처리를 강요하는 분위기"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용직 근로자들이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현장에 앰뷸런스가 출동하면 기록에 남는데 이 때문에 수년 전 사고를 당한 근로자를 하청업체 트럭에 실고 가다 중간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1차적인 원인은 발주처와 원청업체가 산재보험 처리를 하지 못하게 강요한 결과"라며 "특히 고용주가 드러내 놓고 산재 신청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반장이나 상급자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안전 규칙에 따라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실제 산재율은 정확히 파악되지도 않고 있는데 현장 근로자들이 대부분 일용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근로자들이 스스로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하청업체를 자주 옮겨다녀야 해 이른바 '블랙 리스트'에 오르면 재취업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일용직 근로자는 "산재가 인정될 경우 당장 혜택은 받겠지만 하청업체들 사이에선 기피 인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취업을 못하느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낫다"고 자조했다.

업계 전문가는 "후진국형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청 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사실상 원청업체에 책임을 묻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했기 때문"이라며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해 안전규정을 준수토록 하고 이를 어길 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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