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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늙은 군인의 노래'

입력 2019-05-14 21:45 수정 2019-05-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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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래 값은 막걸리 두 말이었습니다.

1976년의 겨울, 퇴역을 앞둔 나이 든 군인은 곡을 쓸 줄 안다는 젊은 군인을 찾아가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 김민기 < 늙은 군인의 노래 >

30년간 군대에 청춘을 바친 노병의 애환과 설움은 막걸리 적신 가사와 함께 만들어져서 전국의 병영으로 퍼져나갔으나…

가사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노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계속 불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몇 달 전에 뉴스룸에서 만난 김민기 씨는 자신이 TV에서 보았던 기묘한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5월의 광주에서 총칼을 든 계엄군이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데…

다른 쪽을 보니 시위대 역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

"계엄군이 저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고 시위대도 그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라는 게 참 묘한 거구나"
- 김민기, 가수(2018년 9월 13일 JTBC '뉴스룸')

계엄군의 태극기와 시민군이 흔들었던 태극기.

그들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기묘하고도 참담했던 시대의 초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39년의 시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 길었을 것입니다.

"5월 21일 전두환 씨가 광주에 왔었다"
- 김용장,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발포가 아닌 사살이었다"
- 허창환, 5·18 당시 보안부대 수사관

민간인으로 변장한 군인들이 시위대에 잠입하여 민심을 흔들었다는 증언도 나왔고…

"편의대 즉,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이 시위대에 들어가서 루머를 퍼뜨리고, 시위대를 과격화해서 폭동화시키는 일을…"
- 김용장,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그런 여론 공작이 결국은 무력진압을 합리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정황도 새삼 드러났지요.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내적 검증을 거쳐 말하듯 했던 당시의 미군 정보요원은 헬기가 낮게 비행하던 봄날의 하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해한 이들은 끊임없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역사의 단죄를 요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마치 나라가 금했으나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기억되었던 '늙은 군인의 노래'처럼…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 김민기 < 늙은 군인의 노래 >

죽지도…사라져 가지도 않는 것…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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