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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2회] 그들에게 세월호는 화물선이었다

입력 2014-05-04 23:02 수정 2014-05-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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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에 뛰어들었어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배에서 탈출한 뒤에도 승객은 안중에도 없었던 모습입니다. 수백 명의 학생과 승객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왜, 전화를 하고 있었던 걸까요.

손용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세월호 승무원 29명 중 운항을 책임진 선박직 선원은 모두 15명이었습니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해 항해 파트와 기관 파트가 각 7명씩입니다.

사고 당시 조타실 당직은 3등 항해사 박모씨와 조타수 조모 씨였고, 선장은 담배를 피우러 갔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습니다.

[전 세월호/항해사 : 그것 자체부터 잘못된 거죠. (맹골수도는) 벗어날 때까지 선장은 어디 가면 안 돼요. 담배를 피워도 브릿지(선박 조종실)에서 피워야 해요. 그때는 화장실도 못 가요. 오줌을 누더라도 바깥에 소변을 해결하고 들어와야 해요.]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선원들은 모두 퇴선이나 인명구조 시 각자 주어진 비상임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자 이들은 모두 상식 밖의 행동을 했습니다.

현장 지휘를 맡아야 할 1등 항해사 강 씨가 가장 먼저 선내를 빠져나왔습니다.

선내 총지휘관인 이준석 선장과 이 선장을 보좌하며 외부와 비상연락을 취해야 하는 3등 항해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승객 등을 구해야 할 갑판장은 아예 승선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시엔 정기 휴가를 사용했다고 전했습니다.

[고모 씨/세월호 갑판장 : 모든 선원이 한 달에 5일이 휴가입니다. 전 일요일에 나왔고, (원래 세월호를 운항키로 했던) 선장은 15일인가, 14일에 나왔습니다.]

인명구조를 위해 구명뗏목과 사다리를 내려야 할 2등 항해사 김모씨와 조타수들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퇴선시 기관실을 지켜야 할 기관장 박모 씨, 그 기관장을 보좌하는 3기관사는 사고가 터지자 자신들만 다니는 통로로 객실이 있는 3층과 4층을 외면한 채 곧바로 5층으로 가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퇴선 시 구명뗏목을 투하해야 하는 1기관사와 2기관사, 조기장도 마찬가집니다.

왜 이들은 승객들을 버렸을까.

검찰에 따르면 선박직 직원 15명 중 1년 이상 근속자는 이 선장과 1등 항해사 강 씨, 조타수 박 씨 등 3명에 불과했습니다.

15명 중 10명은 근무한 지 6개월도 안 됐고, 특히 1등 항해사 신모 씨와 조기장 전모 씨는 세월호 승선이 처음이었습니다.

[전 세월호 갑판장 : 각 방에 보면 배치도 있어. 1타수, 2타수, 3타수, 갑판원. 그러면 1타수는 누구를 보조하며 유사시에 물건을, 물품을 뭐로 들고 가며 그게 다 배치도에 나와. 사람들이 그것을 숙지를 안 한다는 거죠. 그런데 선박회사에서는 전혀 신경을 안 씁니다. 이 사람이 숙지를 했는지 안 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하지만 침몰 상황에서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해야 할 이준석 선장의 행동부터 의혹 투성입니다.

[문예식/둘라에이스 선장 : 선장은 조그만, 미세한 부분도 선이 안 좋다, 누가 악을 쓴다, 냄새가 안 좋다에 민감하게 돼 있었어요. 그런데 배가 기울어진 상태가 몇 분이 됐잖아요. 그 당시까지도 조타실에 못 올라왔다는 것은 어디에서, 뭐 이것은 납득이 안 가잖아요. 3314 그때까지 어디서 죽지 않는 이상은. 잠들어 있는 상황이라도 깨야지, 아주 정신 없지요. 그런데 탈출 장면을 봐도 이해가 안 돼요.]

대타 선장으로서 제대로 된 통제를 할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전 세월호 갑판장 : 비정규직에다가, 거기다가 대타선장으로 명령체계가 제대로 될 것 같습니까? 저도 그랬지만 선원이 선장을 과연 선장으로 보나, 5일 있다 가는데. 현직 선장 같으면 밉보이면 불이익이 올까봐 말을 듣고 하겠지만 5일 있다 갈 사람, 그런 것은 절대적으로 명령 체계가 제대로 안 돼.]

더 이해하기 힘든 건 현장에서 모든 것을 지휘해야 할 1등 항해사 강 씨의 행동이었습니다.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 온 화물 과적과 평형수 부족도 강 씨의 책임이었습니다.

사고가 터지자 강 씨는 본사 담당자와의 통화에 급급했습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도 "회사에서 전화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전화를 가지러 침실에 다녀왔다"고 진술했습니다.

"침실에서 나올 때 탈출하던 필리핀 가수가 옆을 지나갔다"고 말하는 등 당시 상황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침실로 달려가면서, 어쩔 줄 모르고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탈출 지시도 하지 않고 휴대전화만 들고 나온 겁니다.

실제 세월호에서 본사와 통화한 직원은 이 선장과, 객실 승무원, 그리고 강 씨였습니다.

특히 강 씨는 탈출 전 한 번, 탈출 후 네 번 등 총 다섯 차례나 본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만큼 본사와 실질적인 연결고리였던 셈입니다.

지난해 초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강 씨는 업계에서도 실력 좋기로 유명했던 항해사였습니다.

그가 청해진해운으로 옮긴 사실만으로도 업계에 화제가 됐습니다.

일각에선 청해진해운이 실력 좋은 항해사를 고용해 세월호의 허점을 덮으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전 세월호 항해사 : 강 씨는 OOO에서 굉장히 오래 있었어요. 목포에서 제주 다니는 배. 신모 1등 항해사와 비교할 실력이 아니예요. 강00 같은 경우는 업계에서 유명해요. 회사에서 스카웃했잖아요.스카웃해 갔을 때는 뭔가 있었을 거 아니예요?]

지인들은 사고 후 강 씨의 대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강씨 지인 : 내가 OO이한테 고박의 중요성을 굉장히 많이 설명해줬어요. 컨테이너를 왜 상갑판에 싣고 있느냐. 상갑판에 싣고 있으면 큰일난다. 몇 번을 이야기해줬어요. OO이 고박의 중요성을 무진장 잘 알텐데, 회사에서 애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던지.]

전 세월호 항해사는 청해진해운의 관행을 꼽았습니다.

[세월호 전 갑판장 : (청해진해운) 화물 담당이 말씀드린대로 차량이 오면 꽉 차 있는 상태에서도 1대를 더 실어야 되면 뒤로 오라고 해서 실으라고 해서 싸움도 많이 나고 그런 적이 많거든요. 화물 기사들 상대로 물어보면 (청해진해운) 하면 다 알겁니다. 어떤 식으로 했는지요.]

[전 세월호 항해사 : (회사에다) 많이 이야기했죠. 나는 디링부터 이야기했고, 결박도 이야기했고 결국 결박 때문에 그 배를 내렸죠. 이야기해도 안해주더라고요. 아무래도 흔들림도 많은데 이거 타다가 내가 먼저 죽겠다, 도망가야겠다 하고 가버렸죠.]

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승선 전날 물류팀에 화물을 더 실으면 배가 위험한다고 경고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고가 터진 후 강 씨가 본사와 전화로 주고받은 내용도 승객의 안전이나 구조가 아닌 화물에 대해서였습니다.

청해진해운은 "왜 배가 넘어갔느냐", "지금 배의 상태가 어떤가", "현재 배 안에 승무원이 누가 있느냐" 등 배의 상태만 집중적으로 물었고, 승객들과 관련해선 "빨리 탈출시켜라"는 등의 지시는 끝내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청해진해운 측은 사고 발생과 동시에 세월호의 과적이 문제될 것을 우려해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화물 적재량부터 조작했습니다.

침몰 당시 세월호엔 최대 적재 허용량인 987톤의 4배 가까운 3,600여 톤의 화물이 실려있었습니다.

[전 세월호 항해사 : 세월호는 화물차 화물로 그냥 벌고 하는 거지. 여객선은 아니야. 한 사람이 해봤자 3~4만 원. 400~500명 단체는 할인이니까 돈 안 돼. 450명 타는 것보다 화물이 더 비싸. 그 장사.]

결국 이들에게 세월호는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400명 넘는 귀한 승객이 탄 여객선이 아니라 평형수를 빼내고 실은 컨테이너에 모든 걸 맞춘 화물선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강씨가 탈출 직후 본사와 화물 과적 문제를 처리하고 있을 때 배 안의 상황은 어떘을까.

강씨가 진도해상관제센터와 교신을 끝내고 선내를 탈출했던 오전 9시 37분 단원고 학생 고 박예슬 양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습니다.

여학생들이 9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의 객실 앞 복도에 모여 벽을 바닥 삼아 누워 있습니다.

배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세월호와 진도해상관제센터의 교신이 끝나는 시점인데도 대부분 학생들은 여전히 밝습니다.

밖에 해경 구조헬기 소리가 들립니다.

[헬리콥터가 와.]

헬기 소리에 안심했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장난을 칩니다.

[얘들아 원래는 이건데.]

[되게 많이 기울었다. 기울기를 어떻게 풀었지? 원래는 이건데.]

상황이 나빠졌지만 친구들 앞에서 애써 밝게 말합니다.

[힘들어. 살려줘. 살려줘.]

[다리 아파.]

이 때 또 선내 방송이 나옵니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승객분들께서는 구명동의에 끈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구조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습니다.

[와, 바다로 뛰어 내린다.]

일부 친구가 울먹이자 용기를 북돋웁니다.

[엄마 보고 싶어.]

[살 건데 뭔 소리야.]

[살아서 보자.]

아이들은 끝까지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아 어떡해. 무서워, 무서워.]

[여기가 지금 복도입니다.]

[구조 좀.]

영상은 이렇게 오전 9시 41분 28초에 끝납니다.

촬영이 끝난 즈음에 이준석 선장과 항해사들은 배를 탈출했지만, 이 아이들에겐 누구의 손길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앞서 침몰하는 세월호가 진도 관제센터와 비상 교신을 하던 시점에도 아이들에게는 선실에만 있으라고 반복했습니다.

[진도 VTS-세월호]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고 박수현 군 촬영 동영상]

"구명조끼 입어"
"바다로 나갈까"
"엄마, 아빠 아빠 아빠 사랑해요. 00야 수학여행 가지 마라"
"구명조끼 어딨어"
"바다로 수영하게 될 거야"
(승객들은 선실에게 대기하십시오)
"네"

이렇게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난 뒤에도 안내 방송을 따르다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실제 생존한 아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생존 학생 (지난달 18일) : ((승무원 고 박지영 씨의 도움으로) 몇 명이나 뛰어내렸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난간 쪽으로 다 뛰어내렸어요.]

대부분 난간에서 스스로 탈출했다는 겁니다.

[생존 학생 (지난달 18일) : (배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난간이 물에 잠길 때 그때 뛰어내렸어요.]

[생존 학생 (지난달 17일) : 제가 마지막으로 (빠져나오게 됐어요.) 난간으로는 제가 마지막으로 나왔고 그 뒤로는 모르겠어요.]

도대체 세월호 밖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고를 받고 해경 구조정이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35분입니다.

학생들이 가라앉는 배에서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지만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10분간 대기를 합니다.

이어 구명보트 1대만을 이용해 구조를 시도합니다.

해경 구조정은 오전 9시 45분이 다 돼서야 세월호 선수에 다가갑니다.

하지만 구조정에 오른 사람들은 선장과 선원들이었습니다.

[문예식/둘라에이스 선장 : (세월호가) 50도 기울면 60도 기울어지고, 60도 기울면 70도 기울어지고. 그러다가 거의 기울어지기 직전에 해경들이 붙어서는 거예요. 선미 쪽에서 몇 사람 탈출을 하더라고. 그 사람들이 나오는 위치를 보니까 조타실이에요.]

[청해진해운 전 선원 : 브릿지(조종실)에서 바로 줄타고 내려와야 될 정도인데 퇴선을 안 시키면 살인 행위입니다. 살인행위. 그 정도 기울어졌다고 한다면 복원도 될 수 없을 겁니다.]

이윽고 오전 10시 17분, 세월호가 절반 이상 물에 잠긴 뒤엔 아예 외곽으로 빠져 있습니다.

해경 고무보트도 위태로운 승객들을 뒤로 하고 갈피를 못 잡는 모습입니다.

[도와줄까요?]

[저기 구조할 사람들 있으니깐 (가세요).]

그런데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던 사이 왼쪽 객실에서 누군가 창문을 깨려고 시도합니다.

이 승객은 플라스틱 박스로 추정되는 물체를 갖고 창문을 4~5번 쳐보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자력 탈출이 힘들어지자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누군가가 봐주기 만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하지만 구명보트는 구조한 승객들만 태운 채 경비정으로 돌아가고, 객실은 곧 물에 잠깁니다.

해경은 사고 당일 망치와 도끼를 이용해 배 안의 승객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김경일/해경 123정장(28일) : (구조 작업 초반에) 이 망치하고 도끼 가지고 들어가서 거기 유리창 깨고 7명을 빼냈습니다. 유리 파편이 이 정도 크기.]

하지만 해경을 눈 앞에 두고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승객은 끝내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해경은 구조정이 세월호 밑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세월호는 좌현이 먼저 가라앉으면서 우현을 통해 승객들이 탈출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눈에 보이는 해경 구명보트는 1대뿐이었습니다.

해경은 장비와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합니다.

[김경일/해경 123정장 : 저희들은 메뉴표가 있어가지고요, 다 자기 직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직무가 없었던 어선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구조에 나섰습니다.

세월호가 선수만 겨우 남겨 놓은 상황에서 탑승객 한 명이 물 밖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세월호를 겨우 빠져나온 겁니다.

선체 곳곳에서는 거센 물길이 뿜어져 나오고, 쓰러진 컨테이너가 바다 위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이때 어업지도선이 위험을 무릅쓰고 세월호 쪽으로 속력을 높여 달려갑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남학생으로 보이는 탑승객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다가가 구조의 손길을 내밉니다.

[줄만 잡아, 줄만!]

침몰하는 세월호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승객을 붙들고 배를 후진시킵니다.

[후진, 후진, 후진!]

안전한 거리로 물러난 뒤 밧줄을 이용해 탑승객을 힘껏 끌어올리면서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기적의 생환자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딸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통제에 따라 구조를 받아라'고 답장을 보낸 아버지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것 같다고 괴로워합니다.

[박종범/고 박예슬 양 아버지 : '이런 큰 배가 사고 나겠냐. 걱정 안 해도 돼' 이랬단 말이에요.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못 지켜줬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거죠.]

생전 딸이 마지막으로 보냈던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을 달랩니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제가 표현을 잘 못하는데 진심으로 아빠를 사랑해요. 앞으로도 계속 챙겨드릴 건데, 앞으로 2년 반 후에 다 챙겨드릴게요. 왜 먼저 갔냐 새끼야.]

이제 아버지는 딸에게 더 이상 생일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승객보다 화물을 우선했던 선원들과 회사, 승객 구조에 어선보다 못했던 해경.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취재진은 세월호가 만들어진 일본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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