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0년대 초반, 충무로…
그러니까, 여기서 충무로라 함은 퇴계로와 을지로 사이의 그 물리적 존재로서의 길 이름임과 동시에, 한국 영화의 메카로서의 그 충무로…
제가 어린 시절 가끔씩 지나다녔던 그 길은 말 그대로 영화의 본산지였고, 길거리 사진관의 쇼윈도에도 온통 한국영화의 스틸사진으로 넘쳐났던 낭만의 시대였다고나 할까…
결혼하기 전의 신성일, 엄앵란 두 배우의 촬영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도 바로 그 충무로의 어느 비 오는 날 밤거리였으니까요.
신성일.
그는 60년대 청춘의 심벌이었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여든 언저리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 청춘이란 단어를 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60년대 말 그는 짙은 빨간색의 머스탱 스포츠카를 몰았는데, 이름 그대로 그 야생마와 같았던 빨간 자동차는 그 주인과 함께 더욱 청춘의 상징인양 각인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까까머리 중학생 때 우연히 그와 그의 자동차를 보고는 그 모든 것이 현실 같지 않았던 느낌을 가졌던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는 참으로 우리에겐 현실 같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그 엄혹하고도 가난했던 시대를 관통하면서 누군가 하나쯤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제되어 다른 모든 이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줘야 하는 존재로서 허락받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여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제가 백분토론을 진행하던 당시에, 그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참관을 왔을 때, 저는 그 옛날 비 오는 날의 충무로 밤거리의 기억과 저를 환상에 빠뜨렸던 빨간색 머스탱 차에 대해서 얘기했지요.
그는 '아, 그래요…' 하면서 긴말을 이어가진 않았지만, 그저 제 생각으로는, 판타지에서 나와 정치라는 지극한 현실에 몸담았던 그가 그 순간, 그 어떤 회한에 잠시나마 빠졌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 제 맘대로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를 얘기할 때 그 충무로의 비 오는 밤거리와 빨간색 스포츠카를 떠올리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로 상징되던 청춘과 낭만의 시대는 또한 가버렸다는 것을…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