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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멀지는 않아도 험한 길, 탄소중립

입력 2020-11-09 08:5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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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1)

탄소중립 시대가 선언됐습니다. 아직 '어떻게'에 대한 답은 없지만, 목표는 정해졌습니다. 2050년. 배출량과 흡수량이 일치할 수 있도록 앞으로 30년간 엄청난 탄소 감축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할 것은 '답을 찾는 일'이죠. 이 것이 된다, 안 된다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멀지는 않아도 험한 길, 탄소중립

주변의 나라들은 우리보다 앞서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2050년을 목표로 했습니다. 온실가스뿐 아니라 미세먼지의 저감을 이야기할 때마다 '글로벌 동네북'이 되곤 하는 중국도 2060년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정부_발표_기다렸다는_듯_화답_나선_일본_기업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도, WTO 총장 선출을 놓고도 '불편한 발언'을 이어가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지만, 지난달 26일 '2050 탄소중립'을 이야기 한 그의 발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스가 총리는 "온난화 대응은 더 이상 경제성장에 있어 제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온난화 대책을 적극 실시하는 것이 산업구조나 경제사회의 변혁을 불러 큰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날 스가 총리의 '탄소중립' 방안은 차세대 태양전지에 대한 R&D 촉진, 재생에너지의 '최대한도' 도입 등 에너지 전환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멀지는 않아도 험한 길, 탄소중립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총리의 이같은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구체적인 에너지 전환 방침을 설명했습니다. 앞서 스가 총리는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하고 안전 최우선으로 원자력 정책을 추진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확립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가토 장관은 "원전 신설이나 개축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U에 이어서 일본도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원전 확대' 카드를 버린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이 아직은 없기 때문입니다. 원전의 가동 과정뿐 아니라 이후 폐기물의 관리에도 극도의 안전 관리가 필요한 만큼, '100%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거죠.

한편, 총리의 이 같은 선언에 일본의 기업 150여곳이 참여중인 JCLP(일본 기후 리더스 파트너십)는 즉각 환영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환경단체, 시민단체가 아닌 기업들의 단체에서 말이죠. 환영의 메시지와 함께 이들은 4가지 주요 제안을 내놨습니다.

1. 2030년까지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50%로 설정할 것

2. 비효율적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할 것

3. 정책의 기본 원칙을 정하는 데에 있어 경제적 효율성보다 환경적 고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필요한 비용에 '국민 부담'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말 것

4. 오프사이트 기업의 PPA(전력구매계약)를 가능케 하고, 송전망에 투자하는 방안 등을 코로나 19에 따른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추진할 것


이 같은 제안에 대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장다울 정책전문위원은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단체가 할 이야기를 기업들이 한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본에선 JCLP만 탄소중립 대열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경련 격인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역시, 정부의 선언에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 회장은 게이단렌의 대표를 맡고 있죠. 나카니시 회장은 "세계 곳곳에서 각종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라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파리협정의 1.5℃ 목표를 향한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룩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도전"이라면서도 "이는 곧 일본의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의 균형을 맞추려면 개발과 혁신적인 기술의 보급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선 공공뿐 아니라 민간의 각 주체가 탈 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과감한 노력에 나서야한다는 겁니다.

나카니시 회장은 다음의 말로 입장문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게이단렌은 '챌린지 제로' 이니셔티브 등의 노력을 통해 혁신을 이뤄 탈 탄소 사회의 조기 구축이라는 도전에 더욱 과감히 나설 것이다."

총리의 탄소중립 선언과 동시에 어떻게 기업들이 이런 반응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이는 철저한 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멀지는 않아도 험한 길, 탄소중립 (자료: 챌린지 제로 홈페이지)

앞서 8번째 연재글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에서 전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RE100에 대해 설명해드린 바 있습니다. 애플, 구글, BMW, GM, 코카콜라, 스타벅스, 골드먼삭스, 이케아, 나이키 등 200여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한 캠페인 말입니다.
 

위의 게이단렌이 자랑한 '챌린지 제로'는 RE100의 일본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현재까지 총 164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배터리와 같은 '그린뉴딜' 관련 기업만 참여중인 것이 아닙니다. JAL과 ANA와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항공사뿐 아니라 혼다, 도요타 등 자동차 제조사, 제철 및 중공업 등 '탈 탄소 직격탄'의 대상인 기업들도 참여중이죠.

탈 탄소의 속도는 다르지만, 여러 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탄소 저감에 뛰어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이니셔티브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스가 총리가 자신 있게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배출량도_감축량도_통_큰_중국

최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부동의 1위' 중국도 발빠르게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목표 시점은 '글로벌 기준'처럼 자리잡은 2050년보다 10년 늦은 2060년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유엔 연설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세계 최대 배출국인 만큼, 남들보다 '탄소중립'을 위해 줄여야 하는 양도 많습니다. 때문에, 목표 시점이 남들보다 10년 늦다 해도 감축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은 계획입니다.

시 주석의 선언 이후 중국은 발 빠르게 세부 계획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당장 급진적인 변화를 예고한 분야는 자동차 산업입니다. 오는 2025년, 내연기관차의 비중을 절반도 아닌 40%로 묶고, 2035년엔 아예 시장에서 퇴출키는 로드맵을 내놨습니다. 이 같은 계획은 EU보다도 빠르고 영국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맞먹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입니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빠른 팽창에 나서고 있습니다. 당장 중국의 풍력발전 관련 기업들은 업계 차원에서 정부에 설비 확대를 요청하고 나섰습니다. 400여 기업이 '2025년까지 5년간 50GW 이상의 풍력발전을 추가해달라'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나선 겁니다.

중국 국가에너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중국은 풍력발전 규모를 210GW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블룸버그는 업계의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2030년엔 최소 800GW, '탄소중립' 목표 시점인 2060년엔 3000GW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우리는_왜_놀랐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산업계가 속속 대책들을 발표했을까요. 선언에 뒤따른 업계 반응을 다룬 기사들을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화들짝" "깜짝" 등등…

우리도 분명 재생에너지의 확대, 친환경차의 보급 등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이, 계획이 "실천으로 잘 이어지겠구나" 싶을 만한 여지는 아직 뚜렷이 보이진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 이어 11월 3일 국무회의에서도 아래와 같이 재차 탄소중립을 강조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차분하고 냉철하게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정교하게 가다듬으면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재점검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탈탄소와 수소경제 활성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 주기 바랍니다. 녹색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산업 혁신 전략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JTBC 소셜라이브 이브닝에 출연해 "담당 부처들이 거의 낮밤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의 결단에, 그리고 그 결단의 공식적인 발표에 부처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나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재계의 모습은 어떨까요. '혹시나 게이단렌처럼 탄소중립 선언에 대한 성명이 나오진 않았을까' 싶어 전경련의 홈페이지를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멀지는 않아도 험한 길, 탄소중립 (자료: 전경련 홈페이지)

미국 대선에 대한 분석과 고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대한 입장은 있었지만, 탄소중립에 대해선 그 어떤 입장도 내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전경련 홈페이지만 봐선 우리나라가 탄소중립 선언을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당장 기업들이 변화와 행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한국 기업의 RE100을 향한 움직임은 사실, 2020년 11월이 되어서야 나타났습니다. SK그룹의 8개사(SK주식회사, SK텔레콤, SK, SK실트론, SK머터리얼즈, SK브로드밴드,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가입 신청서를 낸 겁니다. 아직 가입이 승인된 것은 아니기에 2020년까지 RE100에 동참한 전세계 260여 기업 중 한국 기업은 '0'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어느 정도 준비나 계획이 세워진 상태에서 국가나 지역의 대표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주변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옳은지, 탑다운(Top-Down) 방식이 옳은지는 모를 일이지만…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왜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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