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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원룸] 성인지 감수성으로 유·무죄를 가린다고?

입력 2019-02-13 09:01 수정 2019-02-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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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첫 유튜브 라이브 뉴스 방송 '뉴스원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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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전후해서 갑작스레 '성인지 감수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네이버 기준으로 지난 1일에는 6위에 올랐고 9일에는 10위를 기록했죠. 이유를 알아보니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재판 때문이었습니다.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2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나왔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법원이 추상적인 감수성을 기준으로 죄의 유·무를 가릴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C 커뮤니티에는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성인지 감수성이) 무슨 뜻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나왔고 D 커뮤니티에는 "인민재판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피해자 말만 받아주고 법치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는 반응도 올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지 감수성이 추상적인 느낌으로 성폭력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도구로 쓰였을까요? 뉴스원룸에서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성인지 감수성이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성인지 감수성? 차별을 감지하는 능력!

 

성인지 감수성은 추상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사회 구조적으로 생긴 차별을 '이성'적으로 분석해내는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왜 남편 집은 '시댁'으로, 아내 집은 '처가'라고 부르지?" 호칭 문제가 제기된 이유는 단순히 기분 나쁜 '느낌' 때문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가치를 기반으로 단어의 차별성을 '이성'적 분석으로 짚어낸 결과입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성인지 감수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젠더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 감수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사회가 사람의 역할을 여성다움·남성다움으로 규정짓는다.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왜 싫다고 의사표현을 못했어?' 따져 묻는 게 아니라 (성역할 때문에) 항의할 수 없는 구조적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 판사의 '뇌피셜' 막는다

 

온라인에서 성인지 감수성은 법정에서 사용하기에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역할을 했습니다. 오히려 추상적인 판단을 몰아낸 거죠. 판사들이 선입견으로 만들어 낸 '성범죄 피해자는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표정을 지을 거야'라는 관념을 법원에서 몰아낸 겁니다. '뇌피셜(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공식적으로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라고 오해하는 행위) 판결'을 막는 장치로 쓰인 거죠.

 

그동안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법원이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2010년 수원지법은 12세 소녀에게 술을 먹인 뒤 집단 성폭행한 20대 남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소녀가 성관계 후 혼자 옷을 입고 여관 밖으로 걸어 나와 피고인들에게 차비를 받았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며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 판결로 미루어 볼 때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여관을 걸어 나오면 안 되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기억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상황을 상세히 기억 못해도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2008년 서울고법은 성폭행을 피해 모텔 6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성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모텔에 청바지와 속옷이 가지런히 있었기 때문이죠. 재판부는 여성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거나 바뀌고 있다며 기억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여관에서 걸어 나와도, 모텔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상황을 기억해도, 상황을 까먹어도 여성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가 판사가 상상하는 성폭력 피해자다운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4월 대법원 판결에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은 법관에게 '상상 속 성폭력 피해자' 대신 실제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대학 교수가 여학생을 뒤에서 껴안는 자세로 지도하고 볼에 입을 맞췄지만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앞서 서울고법은 피해 여학생이 가해 교수의 수업을 계속 수강했다며 피해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죠. 그러나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 법 해치지 않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기준으로 성폭력의 유·무죄를 판단할 경우 무고 사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실관계를 바꿀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게 성인지 감수성이 피해자 진술만 듣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성인지 감수성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해치지 않는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은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라기보다 사법부와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유튜브 이용자 Mar*** S***님은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감정'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의견 주셨습니다. Su**** Jeff*** K***님은 "감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법치에는 없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댓글 주셨습니다.

기획·제작 : 고승혁, 김민영, 김지원
편집: 김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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