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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인생샷' 찍겠다면서…짓밟힌 '분홍 억새'

입력 2017-10-24 22:06 수정 2017-10-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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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수도권의 한 공원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가을 꽃이 피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꽃들은 밟히고 쓰러지고, 아예 꽃밭 사이로 새 길이 났습니다. 문제는 사진이었습니다.

밀착카메라 김도훈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도로 양 갓길이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가득합니다.

공원 진입로 주변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량과 사람들이 한데 뒤엉켰고 맞은편 도로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면적 12만 4000㎡, 축구장 17개가 넘는 규모의 경기도 양주 체험관광농원에는 1000만 송이가 넘는 다양한 꽃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분홍빛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핑크뮬리 군락지입니다.

서양 억새의 일종인 핑크뮬리입니다. 마치 분홍빛 구름이 눈 앞에 떠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색감에 이렇게 바람이 불 때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최근 이곳 핑크뮬리 군락지에서 촬영한 사진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인기를 끌면서 주말이면 하루 관람객 7만 명이 몰려들 만큼 사진 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주도와 부산, 경주 등지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이곳에 선보이면서 수도권 유일한 핑크뮬리 군락지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매년 9월부터 10월 말까지만 분홍빛이 절정을 이루는 탓에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나온 관람객들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꽃밭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꽃 사이에 눈높이를 맞춰 앉거나 아예 반쯤 뒤로 드러누워 포즈를 잡기도 합니다.

관찰카메라로 지켜봤더니, 군락지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꺾이고 베인 듯 옆으로 쓰러진 흔적이 남습니다.

핑크뮬리 군락지 안에는 이렇게 관람객들을 위해 산책로가 조성돼 있습니다. 과연 안 쪽 상황은 어떨지 한번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안쪽으로 5m쯤 들어와 봤는데요. 이쪽에는 아예 짓밟혀서 맨땅이 된 곳이 눈에 띕니다.

한 10m쯤 뒤쪽으로 한번 와봤는데요. 이 안쪽으로 반쯤 꺾이고 짓눌린 채 누워있는 핑크뮬리를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사진 명당을 찾기 위해서 관람객들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지난달 말 가을 꽃 축제가 끝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양주시청 관계자 : 시민들이 막 들어가서, 저희가 가서 몇 번 얘기해도 안 되더라고요. 제발 들어가지 말라고 사정까지 하고 그 정도였어요. 많이 훼손됐어요. 사람들이 다 망쳐놔갖고…]

꽃밭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만 100여 명 안팎, 들어가는 이유도 각양각색입니다.

[관람객 :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서 들어가도 되는 줄 알았어요.]

[관람객 : 그냥 꽃이 예쁘니까. 좀 더 가까이서 찍고 싶어서…]

몰려드는 관람객에 주차관리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화단 관리는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양주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 : (이런 것들은 다 밟혀서 그런건가요?) 그렇죠 네. 거의 뭐 제가 보기에는 관상 가치가 없죠. 현재 상태에서는.]

다른 군락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줄도 쳐놓았지만, 개의치 않고 꽃밭 안을 넘어다닙니다.

[현장 관리인 : 처음에는 괜찮았고 예뻤죠. 이 상태가 아니었죠. (관람객들이) 계속 오시니까 이게 어떻게 통제가 안 되고…]

아예 사람들에게 짓밟힌 꽃밭 가운데로 새로운 길이 생긴 곳도 있습니다.

멋진 풍경이 담긴 내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면서 결국 이곳은 한 달 여 만에 훼손된 채 제 모습을 잃게 됐습니다.

(영상취재 : 변경태·박대권, 영상편집 : 임인수, 인턴기자 : 전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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