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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치사냐 살인이냐…'거제 묻지 마 폭행' 논란 되풀이

입력 2018-11-03 17:39

고의성 여부에 따라 상해치사·살인 갈려…아동학대 사건 쟁점

전문가들 "부실수사 따지기 어려우나 초동대처에 일부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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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성 여부에 따라 상해치사·살인 갈려…아동학대 사건 쟁점

전문가들 "부실수사 따지기 어려우나 초동대처에 일부 아쉬움"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묻지 마 폭행 살인 사건' 가해자에 대한 혐의 적용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피의자 A(20)씨를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이 살인으로 혐의를 달리해 구속기소 하면서 일각에서 경찰수사부실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상해치사와 살인을 가르는 기준은 '사람을 죽이려는 고의성이 있었나'에 달려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지 또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살인혐의가 적용된다.

폭행 결과로 상대방이 숨지더라도 '살인 고의성'이 없으면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의성 여부는 심리적 요인에 가깝고 객관적 규명이 힘들어 지금까지 많은 강력사건에서 논란이 됐다.

2013년 경북에서 계모가 8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이 단적인 예다.

당시 검찰은 의붓딸이 폭행 이틀 뒤 숨졌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살인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상해치사죄로 계모를 기소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와 법조계는 살인죄를 적용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법원도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계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 물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2015년 울산 한 모텔에서 내연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도 살인혐의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구급대원을 불렀다는 점을 참작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살인죄를 고집하다 무죄 판결이 선고된 뒤 항소심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형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2015년 전남 나주시에서 생후 열 달 된 딸을 때려 숨지게 한 30대 여성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여성은 잠을 자지 않고 우는 딸을 달래다가 10분간 주먹으로 배 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 권유에도 검찰이 살인죄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살인죄 인정 여부만 검토하게 된 1심 재판부는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열린 항소심에서 검찰이 예비적으로 적용한 상해치사죄를 인정받아 법원은 이 여성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처럼 살인과 상해치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적용 혐의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행 법률은 범죄의 결과와 함께 동기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의성이 인정된 살인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고의성이 인정 안 된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그친다.

그렇다면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던 '거제 묻지 마 폭행 살인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경찰 적용 혐의가 검찰에서 바뀐 것은 절차상 왕왕 있는 일로 부실수사 논란의 대상이 아니지만, 경찰 초동수사에 일부 아쉬운 대목은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죄목이 문제가 아니라 사건 본질을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초동 단계에서 경찰이 고의성 여부를 명백히 판단했어야 한다고 본다"며 "기억 안 난다는 피의자 말만 믿기에는 수십 분 동안 폭행하며 피해자를 들여다보거나 목격자들에게 '내가 경찰이니 그냥 가라'고 이야기하는 등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피해자가 치료 중 숨졌다고 하는데 이 내용이 맞는다면 상해에서 상해치사로 혐의를 바꿔 적용한 게 납득되는 부분도 있다"며 "다만 실제로 현장에서 숨진 상태가 아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숨진 상태였다면 수사가 허술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을 통해 확인한 '현장범인 인수서'를 보면 당시 피해자는 '현장에서 피범벅이 되어 의식은 있으나 진술은 힘든 상태'로 그 시점까지 숨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고의성 여부는 심리적 요인에 가까워 지금 섣불리 평가하기보다 법원 결정을 지켜보는 게 옳다"며 "살인과 상해치사 적용 문제는 그간 수차례 논란이 되풀이됐으며 특히 아동학대 사건에서 많이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와 별개로 이번 '거제 묻지 마 살인'처럼 잔악무도한 사건은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법 감정"이라며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측면에서 엄벌주의 문화는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류혁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은 경찰이 살인혐의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은 논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는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고 검찰을 거쳐 최종 결론에 이르면 혐의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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