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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여실히 드러난 인권위의 현실…'라쇼몽'

입력 2015-03-02 22:03 수정 2015-03-0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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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시작은 앵커브리핑입니다.

1950년작 영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을 기억하시는지요.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증언이 작품의 주요 내용입니다.

같은 사건이었지만 관련자들의 주장은 제각기 달랐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재구성하는 기억. 학계에서는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 라고 부르더군요.

오늘 앵커브리핑이 고른 단어 '라쇼몽'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혹시 침해는 없는지 감시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구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임무를 거꾸로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인권위가 유엔에 제출하는 인권규약 이행자료 최종안이 나왔는데, 초안에 담겼던 쟁점 중 정부에 민감한 내용들이 대거 삭제됐다는 겁니다.

'분량이 많다' '인권위 관여사항이 아니다' 등의 이유로 사라진 항목은 총 65건 중 34건…절반 이상입니다.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물론 언론 독립성,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의 채증 등 민감한 인권사항들이 전부 수정과정에서 지워진 겁니다.

마치 라쇼몽처럼.

인권위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삭제하려 한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2007년 이후 우리나라가 유엔 국제인권규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판가름할 잣대가 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받는 성적표는 어찌 보면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보수정권이 받는 인권성적표이자 논란 속에 출발한 현병철 인권위의 성적표가 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물론 '초안'에 들어간 모든 쟁점을 최종보고서에까지 넣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앞서 1부 리포트에서 전해드렸듯 인권위 내부에서조차 "여당 출신 상임위원이 민감한 쟁점의 취사선택을 지시했다"는 증언마저 나온 바 있습니다.

"역사란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 3.1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했습니다. 필요한 것만 골라서 기억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리고 바로 직전까지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퇴임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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