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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라면이 익어가는 시간…'3분'

입력 2016-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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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라면을 처음으로 먹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1963년 9월. 53년 전이군요.

당시의 우리에게 첫선을 보였던 라면 값은 10원. 짜장면 값이 30원일 때였습니다. 다른 모든 음식을 처음 대했던 날은 기억에 별로 없지만 라면만큼은 왜 이리 선명히 기억에 남았는지… 대표적 작가 두 분의 묘사로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는 게 낫겠습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 철은…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 이문열 <변경>

"TV 광고에서 라면국물을 쭉 들이킨 연기자가 아, 하면서 열반에 든 표정을 지을 때"

*김 훈 <라면을 끓이며="">

이 표현들 동의하지 않을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의 첫 라면보다도 5년 앞선 58년 전의 오늘, 1958년 8월 25일은 이름만 들어도 군침부터 돌게 하는 인스턴트 라면이 세상에 처음 나온 날입니다.

그 날로부터 라면은 세상을 얼마나 바꿔 놓았던가… 처음엔 신기함에 라면을 '공손'하게 대했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라면은 시간과 비용에 쫓기는 숨 가쁜 서민을 위로하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공단으로 갔던 많은 누나와 형들의 주된 음식이 라면이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오히려 길게 느꼈던 그 포만감으로 이른바 수출입국을 이끌었다는 찡한 얘기들…

그리고 그 찡한 얘기는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2016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현실로 남아있습니다.

가방 속에 컵라면과 숟가락을 넣고 다녔다던 그 청년. 누군가는 그의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위선이라 일갈했다지만… 청년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쪽지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한 지금도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학교는 구의역이다' 오늘(25일) 뉴스룸은 비정규직 급식조리사들의 열악한 근무형태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들은 학교라는 이름의 또 다른 구의역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급이 아닌 분급. 분단위로 매겨지는 임금 탓에 정작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못하는 에어컨 설치기사들 역시. 올여름 논란이 됐습니다.

끓는 물에 3분. 짧다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그 행복한 3분마저도 쉬이 허락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오늘은 라면의 생일. 오늘밤도 누군가는 열반에 든 표정으로 라면 국물을 들이키겠지만 우리는 그 라면 하나로 왜 이리 만감이 교차해야 하는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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