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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수치심' 바꾸자는 검찰, 성평등 내부 게시물엔 '악플'

입력 2021-05-30 10:46 수정 2021-05-31 08:14

"상위법령 그대로라 개정 어렵다" 현실 문제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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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법령 그대로라 개정 어렵다" 현실 문제 지적도

JTBC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성적 수치심' 표현을 연속 조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현행 성폭력처벌법과 검찰 내부 규칙에 나와 있는 '성적 수치심' 표현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자는 목소리에 대해 다뤘습니다.

◆ 관련 기사
[단독] 논란됐던 '성적 수치심'을 '불쾌감'으로…검찰, 표현 바꾼다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6268
"'성적 수치심' 용어 바꾸자" 불 지핀 '레깅스 몰카' 사건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6650

이번 편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온 구체적인 배경과 진행 상황을 짚겠습니다.

■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용어"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은 '성적 수치심' 용어에 대한 의견 검토 보고서를 냈습니다. '수치심'은 '타인을 볼 낯이 없는 부끄러움'을 의미하고 죄책감과 맞물린, 가해자가 느껴야 마땅한 감정이라는 겁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아니라 전통적인 과거 정조 관념에 뿌리를 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용어라고 했습니다.

검찰 실무와도 맞닿아있습니다. 검찰 예규에 따르면, 피해자 신상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피해자의 신체 사진이나 영상물(CD, 비디오 테이프 등) 증거자료를 사건기록과 분리·공개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이 성적 수치심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낀 사진이나 영상물은 비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겁니다.

이 같은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8년 경찰과 검사, 판사, 변호사, 교수, 비정부기구 관계자 등 47명을 대상으로 '처벌법상 사회적 법익 관련 용어 변경의 필요성'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동의한 비율이 65.2%에 달했습니다.

독일 판례도 있습니다. 독일은 1969년 '성적 수치심'을 삭제하도록 형법을 개정했습니다. 성적 수치심의 개념이 아닌, 가해자 행위 중심 용어인 '불쾌감 유발' 등의 표현으로 바꿨습니다.
〈사진=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 검찰 개정 작업 더딘 이유

지난해 11월 초 검찰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내부 훈령과 예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검찰 내부 규칙은 해당 규칙을 만든 소관 부서에서 개정해야 합니다. 권고가 나온 지 6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성적 수치심' 대신 '성적 불쾌감'으로 용어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9일 JTBC 보도 이후, 대검 복지후생과가 '대검찰청 공무직 등 근로자 관리지침'을 개정해 지난 25일부터 시행했습니다.

◆ 관련 기사
[단독] '성적 수치심'→'성적 불쾌감' 대검 일부 규칙 오늘부터 시행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6930

"실질적으로 개정하기 어렵다"는 일선 청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요 사유로 내세운 건 '사법체계'입니다. 검찰 내부 규칙보다 상위법령인 성폭력처벌법에 나온 '수치심' 표현이 바뀌지 않아 하위법령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성폭력처벌법 속 '성적 수치심' 표현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자는 국회 의원입법안이 올라와 있지만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 "여가부 자료인 줄" 여전히 낯선 검찰 내 '성평등'

상위법령이 그럴지라도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검찰 내에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검찰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검찰 내부 규칙을 성평등 관점에 맞춰 바꾸라고 권고한 뒤, '성적 수치심' 용어 말고도 '호주'란 용어가 '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호주제가 2007년 폐지됐지만 '호주'란 용어는 대검 소관 예규에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예규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업무처리지침(제738호)'에서 '호주의 성명 등'이 '가족의 성명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서 대검 양성평등정책관실이 성평등 관점에 맞춰 개정하라고 권고한 건 대검 소관 훈령 40개 중 9개, 예규 230개 중 35개입니다. 지금까지 훈령 2개와 예규 6개가 바뀐 상태입니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라오는 양성평등 홍보 게시글들에는 응원의 댓글들이 꽤 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게시글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성희롱을 설명하는 글에 "여가부 자료인 줄 알았다. 검찰청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결국 가해자는 남성...여전하다", "누가 만든 것인지 답답하다", "특정 성별만이 가해자라는 편항된 시각으로 제작됐다. 즉시 삭제바란다"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양성평등 홍보 팝업물이 자주 올라와 짜증난다'는 취지의 글도 올라왔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검찰 내부 성인지 감수성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움직임이 더딘 건 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레깅스 불법 촬영물 사건'을 통해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성적 수치심' 용어에 대한 지침이나 규정을 바꾸자는 논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취재진 문의에 "판결에 나온 내용은 하반기 성희롱 예방 교육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전해왔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성적 수치심' 용어가 단순 용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겠습니다. 실제 수사기관 조사와 법원 재판 과정에서 이 용어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다룹니다.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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