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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20년 후에도 거긴 그럽니까?'

입력 2016-07-0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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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경기도 수원 교부의 신부님. 어릴 적 그가 살던 동네는 미군 비행장과 냇가에 고립돼 있어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밥을 지을 때도, 방을 따뜻하게 덥힐 때도, 군불을 때고, 연탄불을 갈아야 했지요.

무엇보다도 부족함을 느껴야 했던 것은 바로 텔레비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온통 텔레비전 얘기뿐이었지만 그는 할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궁즉통'이라. 그의 집에서 자그마한 텔레비전을 사들여서 자동차 배터리에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텔레비전은 9인치짜리. 크면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어서였답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전봇대가 들어서고 전기 콘센트가 생기고 텔레비전이 자동차 배터리에서 해방됐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게 너무 기뻐서 돼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

텔레비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거실에서 안방으로, 그리고 손바닥 위로 이동해 가는 사이에 사람들은 실제 세상보다 텔레비전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그렇게 텔레비전은 우리의 삶을 점령했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우리를 점령한 텔레비전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이치로 우리를,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 텔레비전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논했던 합리적 이성의 광장.

즉 공론의 장을 텔레비전이 실현하리라는 기대를 접어버린다면 힘을 가진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대중의 여론을 만들고 조작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를 보도에 개입하는 압력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통상적인 업무로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로 택할 질문은 아닌 듯 합니다. 압력이어도 문제이고 통상적 업무라 해도 문제라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지난주에 이 자리에 출연했던 배우 조진웅 씨는 드라마 '시그널'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20년 후에도 거긴 그럽니까? 뭔가 바뀌었겠지요?" 이 한 마디의 대사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권력이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의 여론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이 통상적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가 던졌던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고, 또한 20년 후의 그 대답도 여전히 같을 것입니다.

"아니요… 별로 바뀐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재한 형사의 질문이 있기 훨씬 전… 텔레비전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던 전삼용 신부의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은 그것이 꼭 기쁜 일이었던가를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5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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