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4년 만에 되찾은 재규어…'나는 왜 대포차가 되었나'

입력 2015-08-31 11:25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건 4년만이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감췄던 내가 대구 한 주택가에서 나타나자 그는 아연해했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내려온 그는 나를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위로 반가움과 원망의 애증섞인 표정이 지나갔다.

'그러게...누가 날 버리래?'

속으로 생각했다.

내 이름은 재규어XJ. 고상하고 우아한 이목구비에 날렵한 몸매를 가진 나는 2010년 8월 그와 처음 만났다. 40대 투자사업가였던 그는 회사명의로 나를 리스했다. 업무용으로 차를 리스하면 비용을 공제해주는 세제혜택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1년간 나는 그의 사업파트너로서 이곳저곳을 다녔다. 출고가 1억4000만원이라는 내 몸값은 그의 재력을 증명했고 사업상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보유하고 있던 다수의 차 중 나를 처분하려고 했다. 2년 남은 나와의 계약을 대신 받아갈 리스 승계자를 찾고자 양재동 중고차 매매상을 찾아가 나를 맡겼다. 며칠이 지났을까. 30대 남자가 나타나서 나를 시승해보고 싶다고 했다. 중고차 업주는 순순히 키를 넘겼고 그는 그길로 나를 데리고 달아나버렸다. 곧이어 다른 중고차 업자인 30대 김씨에게 1000만원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때부터 내게는 '대포차'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김씨한테는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아우디, 벤츠 등이 10여대 있었다. 그는 주로 인터넷 중고차 매매사이트를 이용해 거래했다. 휴대폰으로 흥정을 하고 거래는 탁송기사를 써서 입금만 된다면 당일이라도 전국으로 보내버렸다.

나 역시 그렇게 팔려갔다. 주로 20~30대 헬스트레이너, 판매원, 회사원들이 한두달 나를 데리고 있다 100~300만원의 이윤을 남기고 되팔았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외제차는 타고 싶고 덤으로 돈까지 버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법에 혹했다.

그들은 나를 애지중지했지만 함부로 굴리기도 했다. 주정차 위반은 물론 속도위반,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위반도 밥 먹듯 했다. 심지어 톨게이트에서는 요금을 내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딱지가 끊겨도 나를 찾고 있을 주인한테 날아갈테니 교통법규 따위 개의치 않았다.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고지서가 따박따박 날라오는데 그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더라."

주인은 나중에 이렇게 얘기했다.

그즈음 주인은 나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리스 계약을 종료하려면 나를 회사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울며겨자 먹기로 꼬박꼬박 매달 리스료까지 납부했다. 사업상 신용등급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계약기간이 만료돼서도 나를 찾지 못했고 주인은 불법명의자동차 신고접수를 하며 나를 자기 명의로 돌렸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4년간에 걸친 내 방황에 종착점을 찍은 건 올해 경찰이 대포차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다. 과태료 50건 이상 체납 차량은 대포차로 의심할 만하다고 판단, 집중단속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대구 주택가에 주차돼 있던 나를 알아본 것이다.

경찰은 내 번호판을 영치해갔고 그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인은 밀린 과태료 300여만원을 내고서야 나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게 올해 6월이었다.

듣자하니 나를 거쳐갔던 이들은 장물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됐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이 이들을 적발하면서 올해 캐낸 대포차 매매자는 81명, 그들이 유통한 자동차는 1300대에 달했다. 경찰에게 전국에 약 2만여대가 대포차로 떠돈다는 얘길 들었다. 나와 함께 있었던 다른 차들은 지금쯤 집에 돌아갔을까 궁금해졌다.

(뉴시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