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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총탄에 쓰러졌던 고교생…38년만에 명예로운 졸업

입력 2019-05-15 20:26 수정 2019-05-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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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시위에 나섰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았던 고등학생이 38년만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이제 50대가 된 이 명예졸업생은 아직도 계엄군의 총탄이 몸에 남아 있지만 시위에 나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진명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교련복 바지를 입은 학생이 병원 침대에 실려 옮겨집니다.

당시 고교 3학년이던 전형문 씨는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탄을 배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총알이 허리띠 양철 부분에 먼저 맞은 덕분에 총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다리 마비 등 총상 후유증이 찾아왔습니다.

수업을 받지 못해 결국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습니다.

50대가 된 전씨는 오늘(15일) 다시 학교를 찾았습니다.

정상적이라면 1981년 2월 받을 졸업장을 38년 늦게 받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교실에 찾아가 감회에 젖습니다.

전씨 골반뼈에는 빼내지 못한 총알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전형문/5·18 당시 광주 서석고 3학년 : 거기(전남도청) 간 건 후회를 안 해요. 거기 가서 다친 거는 내 운명이고.]

올해 5·18 39주년 기념식에는 이런 학생 희생자들의 사연이 소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항쟁 마지막날인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안종필 군입니다.

당시 고교 1학년이었던 안군은 유품으로 교복 영수증과 500원을 남겼습니다.

유족들은 안군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5·18 당시 숨진 학생 희생자는 16개 학교, 18명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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