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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69주년…월미도 여전히 '잃어버린 고향'

입력 2019-09-17 07:45 수정 2019-09-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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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서 미군의 폭격이 있었던 한 민간인 마을 얘기인데요, 전쟁 후에는 이곳에 미군이 군사시설을 만들었고 우리 해군 기지를 거쳐서 지난 2001년부터는 공원이 됐습니다.

오효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놀이공원으로 잘 알려진 월미도 한 켠,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비석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전쟁의 승리에 가려져버린 어느 주민들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립니다.

상륙작전을 5일 앞두고 월미도에 별안간 폭격이 시작됐습니다.

미군은 인천에 진입하기 위해 당시 인민군이 주둔하던 이곳부터 장악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월미도에는 민간인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높이 않은 고도에서 폭격은 계속됐습니다.

네이팜탄과 기관총 사격에 100여 명이 숨졌고, 남은 사람들은 속옷바람으로 고향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한인덕/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 : (갯벌로 가서) 개흙을 서로 다 묻히고 가만히 숨어 있다가… 가마니를 요 삼아 이불 삼아 깡통 들고 밥 얻어먹으러 다녔다고…]

그렇게 나온 고향 땅은 다시 밟지 못했습니다.

미군은 상륙 직후 이곳을 군사시설로 썼습니다.

그 뒤 우리 해군이 이 곳을 인수했고, 그 다음에는 인천시가 매입해서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해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의 땅을 가져가버린 사실도 나중에야 드러났습니다.

[한인덕/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 : 일본 사람이 뺏고, 우리나라가 뺏고. 국가가 우리 국민을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피눈물 나게 해놓고는…]

지난 2008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가 이들에게 피해를 보상하고 위령사업을 도우라고 결정했습니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켜진 것은 없습니다.

최근 인천시가 생활지원금을 주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대상이 한정됐습니다.

[김용수/시인 :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제물포의 물살들은 대해로 흘러가지 못한 내 부모, 내 형제의 넋인 것을…]

(사진제공 : 인천시립박물관)
(영상디자인 : 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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