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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안방 대구뚫은 김부겸, 야권 대선주자 '급부상'

입력 2016-04-14 01:36

세번 도전끝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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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 도전끝에 '성공'

새누리 안방 대구뚫은 김부겸, 야권 대선주자 '급부상'


대구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14일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권의 텃밭인 대구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꺾고 당선이 확정되면서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게 됐다.

매우 탄탄한 전통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야당의 김 후보가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김문수 후보를 당당히 물리친 것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이정표라 할만하다.

때문에 김 당선인은 야권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군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김부겸 후보와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 간의 수성갑 대결은 지역구 한 석의 의미를 뛰어넘어 여·야 잠룡간의 대결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김 후보의 승리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견줄 수 있는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이번 승리는 TK(대구·경북) 지지를 받는 첫 야권 대권주자 탄생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통 야당 출신 후보가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당선된 것은 1985년 이후 31년만에 처음이다. 소선거구제하에서는 1971년 이래 45년만이다.

김 후보는 당선이 확정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국민이 다시 한 번 굽어 살펴주신 덕분"이라며 "더 이상 지역주의도, 진영논리도 거부하겠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가 이번에 전국 최고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그만큼 변화에 대한 대구 시민의 열망, 뭔가 현실을 바꿔 보자는 수성구민들의 열화와 같은 열망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그만큼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정확하게, 부지런하게 대변해야 겠다는 그런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김 당선인은 경기 군포에서만 내리 3선(16·17·18대)을 지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새천년민주당 유선호 후보와 불과 254표 차이로 당선됐다.

김 당선인은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영춘 등과 소장개혁파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대북송금특검에 반대하다 당내 보수파와 갈등을 빚다가 2003년 7월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후 탈당한지 5개월 만에 더민주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정치권은 이들을 '독수리 5형제'로 불렀다.

2012년 19대 총선때도 자신의 지역구인 군포에서 4선을 예약해 둔 상황이었지만 갑작스레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대구는 철웅성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대구수성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40.42%의 득표율로 52.77%를 얻은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에게 패배했다.

지난해에는 6·4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40.33%의 상당한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높은 보수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새누리당 권영진(55.95%) 후보에게 패했다.

결국 세번이나 대구에서 도전을 한 끝에 당선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고 졸업 후 서울대 정치학과 76학번으로 입학한 김 당선인은 1977년 유신반대 시위를 주동하다 투옥됐다. 1980년에는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 시위를 이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두 차례의 실형을 살았다. 그는 제적과 복교를 거듭하다 1987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6월 항쟁을 주도했고 1991년부터 민주당에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변인으로 있던 민주당에서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2년 11월 '이선실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세 번째 구속을 당했고 이듬해 2월 석방됐다.

1995년 김원기, 제정구, 노무현, 김정길, 이철, 유인태, 원혜영 등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해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했다. 김 후보는 이 중 막내격이었다.

원내 수석부대표, 교과위원장 등을 지내며 야권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정치적 성향 차이로, 민주당에서는 TK·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번 승리는 김 당선인은 여야를 아우르는 야권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위상이 급상승하게 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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