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후폭풍이 거세지요. 시장에선 면세담배가 버젓이 유통되고, 담배 판매점에선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손용석 기자가 부산의 깡통시장을 비롯해 그 은밀한 현장을 포착했습니다.
[기자]
지난 5일 부산 부평 시장입니다.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 통조림 등을 팔면서 '깡통시장'으로 불립니다.
위스키 등 각종 수입품과 함께 담배도 눈에 띕니다.
[담배 판매상 : (담배 있어요?) 많이는 못 드립니다. 필요한 게 몇 보루죠? (10보루도 되나요?) 10보루 가져가세요.]
그런데 취재진이 직접 담배를 구입한 결과 뭔가 이상했습니다.
일반 소매점에서 살 수 없는 면세용 담배였습니다.
원래는 공항이나 국제여객터미널의 면세점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에 한보루 이상 구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면세점도 아닌 깡통시장에서, 그것도 10보루를 통째로 거래하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버젓이 이뤄질 수 있을까?
취재진은 유통 경로를 추적해 봤습니다.
수소문 끝에 면세용 담배를 암거래한 외항 선원을 만났습니다.
[외항선원 : 깡통시장 가면 미국과 일본제 파는 곳이 있어요. 우리가 담배 한 보루에 1만5000원에 사는데 보루당 2000원 남기고 (시장에) 팔아요.]
외항선원들은 일반인보다 많은 면세용 담배를 구입할 수 있는데, 이 담배를 암시장에 내다 판다는 겁니다.
면세용 담배 밀거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습니다.
취재진이 잠입 촬영을 하는 동안 누군가 담배 판매점으로 다가옵니다.
[면세 담배 구입자 : 더 주세요. 10보루 맞춰서 주세요. 이 사람 대구에서 왔어요.]
대구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면세용 담배를 사가는 겁니다.
불법이지만 서로 잘 샀다며 덕담도 건넵니다.
[면세 담배 구입자 : 난 지난번엔 40보루 샀잖아. 그땐 한 보루에 1만9000원이었는데. 지금은 2만5000원이잖아. 그때 사길 정말 잘했지.]
거래가 이뤄지는 동안 순찰 중인 경찰이 바로 옆을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단속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밀거래에 가담한 이들을 경찰을 무시하는 발언도 합니다.
[밀수 담배 구입자 : 경찰이다. 걸리면 안 되는데. 안 샀다고 하면 되지.]
심각한 문제는 최근 담뱃값 인상 발표가 나온 뒤 면세용 담배 가격이 뛰고 있다는 겁니다.
저렴한 면세용 담배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자연스레 올라가고 있는 겁니다.
[면세 담배 판매상 : (이건 얼마예요?) 2만4000원. 내년 1월 1일 가격 인상되면 여기도 3만3000원, 3만5000원으로 올라가겠지.]
면세 담배가 불법 유통되는 곳은 깡통 시장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입니다.
취재진이 담배 파는 곳을 묻자 간판도 없는 잡화점을 알려줍니다.
[남대문 시장 상인 : 저기 앞집(에서 팔아.)]
해당 가게에서 담배가 있냐고 하자 탁자 위 천을 걷어냅니다.
잠시 뒤 수많은 수입 담배들이 드러납니다.
[면세담배 판매상 : (한 갑에) 4500원. 미국에선 별로 안 비싼데 물류비가 비싸요.]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이곳의 담배들도 모두 면세품이었습니다.
서울 복판에서도 공공연하게 면세 담배가 밀거래되고 있는 겁니다.
남대문에서도 면세 담배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합니다.
[면세담배 판매상 : 필리핀 거 말보루가 10개 남아 있었는데 지금 다 떨어졌네요.]
밀거래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사재기입니다.
지난 5일 서울의 대형 할인점입니다.
담배 판매대가 텅 비었습니다.
월 초에 입고된 담배가 사흘도 안 돼 다 팔린 겁니다.
[김재인 안전팀장/이마트 구로점 : 오픈하면 바로 담배만 사가지고 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담배에 제재를 많이 가해도 절취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담배 판매 코너를 지켜봤습니다.
모녀가 할인점에 들어와 담배 한 보루씩 들고 가 계산합니다.
잠시 후 딸이 다시 들어와 담배 한 보루를 또 집습니다.
이번엔 다른 판매대에서 계산을 합니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 1인당 한 보루씩만 판다는 경고 문구가 무색합니다.
편의점 같은 소매점은 더 심각합니다.
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 편의점을 돌며 담배 쇼핑을 합니다.
비흡연가를 데리고 가서 담배를 구입한 뒤 나중에 돌려받는 경우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담배관계 관계자 : 우리 단골 아니신 분들도 많이 찾아와요. 3~4갑씩 사가셨던 단골들에게도 다 한 갑씩만 드려요.]
밀거래와 불법 사재기가 판치는 담배 시장, 단속의 손길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