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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2009년 이후 최고… 명절이 서러운 건설 근로자

입력 2013-09-1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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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2009년 이후 최고… 명절이 서러운 건설 근로자


"아내와 자식들한테 미안해요. 저 하나로 가족 생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지난 6월부터 넉 달여간 서울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한 박모(46)씨에게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전혀 달갑지 않다.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건물 외관 마무리 작업을 했지만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밀린 임금 500여만 원을 받기 위해 건설업체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사정도 하고 읍소도 해봤지만 '경영이 나빠져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박씨는 올 추석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뵙는 것도 포기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다니느라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탓에 가족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박씨의 아내는 일용직 빌딩 청소원과 식당종업원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간신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차일피일 임금 지급을 미루는 건설업체 태도에 화가 나요.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한테 월급이 한 달만 밀려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한 해 동안의 결실의 기쁨을 누리며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할 추석 명절이지만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올해 건설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명절 보너스는커녕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한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체불임금 누적액이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은수미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근로자 15만4000여 명이 7100억여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4년간 평균 체불임금 6600억 원보다 6.8% 증가한 수치다. 또 1인당 평균 체불액도 461만 원에 달해 지난해 비해 11%나 증가했다. 또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 전체의 42%를 차지해 체불 임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체불임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업주들이 근로자들의 체불임금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금사정을 이유로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가 일했던 건설업체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도 중요한데 부족한 사업 자금을 먼저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며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기업 경영 자금을 마련해 운영해야 월급이 나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또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하는 악덕업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벌금형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악덕업주들은 중재 과정을 거쳐 지급액을 탕감받기 위해서 일부러 임금 지급을 미루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부분 벌금형으로 그치다보니 실제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처벌을 받겠다는 사업주들도 있다"며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검찰과 협의를 통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일시적인 경영난을 겪는 사업장의 체불 근로자의 생활안정 지원을 위해 재직 중인 근로자의 경우 1000만 원 한도로 빌려주고, 퇴직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업주가 체불을 청산할 수 있도록 최고 5000만 원 범위 내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또 올해부터는 바뀐 근로기준법에 따라 상습적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해 명단과 체불내역을 공개하고 금융거래를 차단하는 등의 신용제재도 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지난 5일 상습 체불 사업주 234명의 실명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실명 공개에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3년 안에 임금 체불로 두 차례 이상 유죄판결을 받고 1년 안에 3000만 원 이상의 체불이 있는 사업주로 한정돼 있고, 아예 폐업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불경기를 핑계로 매년 반복되고 있는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힘들면 돈을 떼먹어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있다 보니 우리 사회 체불임금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떼어먹는 악의적인 사업주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아닌 보다 강력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먹는 행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인식해야 한다"면서 "일시적인 자금난 때문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근로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금 형태로 긴급 지원하고, 나중에 사업주로부터 받아내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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