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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포천 존속 살인사건, 왜 아버지를 죽였나?

입력 2013-09-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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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추석을 앞두고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죠. 경기도 포천에서 일가족이 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 유언을 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경찰은 계획범죄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오늘(23일)의 긴급출동, 신혜원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아침.

고개 숙인 남성이 유치장에서 나옵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유언 남기셨어요? 직접 들으셨나요?]

지난 8일, 가족들과 합의해 뇌암 말기인 아버지를 살해해 충격을 준 27살 이 모 씨입니다.

그는 말이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이 씨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큰 누나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큰 누나를 통해 "너무 고통스러우니 목숨 좀 끊어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전해 들었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 : 처음에 아들이 안 하겠다고 했다는 거야. 나는 못한다, 자식이 어떻게 그러냐.]

하지만 다음 날, 이 씨는 어머니와 큰 누나 앞에서 아버지의 목을 눌렀습니다.

이 씨는 작은 누나에게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나도 죽겠다'는 문자를 보냅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숨진 줄만 알았던 작은 누나는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관계자 : 우리가 잡아서 네가 아버지 죽인거 맞냐? 내가 죽인거 맞다.]

아버지가 뇌 암 진단으로 최대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건 지난해 말.

고통이 점점 심했졌다고 합니다.

[이씨 어머니 : 아빠 죄송해요. 아빠 유언대로 해드린다고 편하게 가시라고, 그냥 갈 거면, 슬그머니 지압하듯이.]

그런데 일부 이웃들 사이에서 석연찮은 얘기가 흘러 나옵니다.

56살인 아버지가 최근까지도 거동이 꽤 활발했다는 겁니다.

[이웃 주민 : 기저귀 채워서 6개월 동안 똥오줌 다 받아냈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걸어 다니고 맨날 차 타고 다니고 운전도 했어.]

더 충격적인 증언도 있습니다.

[이웃 주민 :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이런 얘길 (저에게) 했어요. 딸년이 나 죽이려고 했다.그 소리 들었다, 합의하는 거 들었다. 무섭다. 그 소리를 했어요.]

이런 의혹들이 제기되자 경찰은 계획 범죄였을 가능성도 조사 중입니다.

[경찰 관계자 : 가족들 진술이지. 말한 분은 돌아가셨잖아.]

가족들은 이런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는 상황.

[이씨 큰 누나 : 마음 아파 죽겠는데, 어디서 그런 소릴 들었는지모르겠지만 아니거든요.]

숨진 아버지는 올 초까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 암 선고를 받자, 집을 비우고 큰 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폐허처럼 변한 집, 한때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엄청난 시련이 찾아온 건 지난해 말.

취재진은 당시 큰 딸이 포천시의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찾아냈습니다.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는데, 배당금과 정부지원금 한푼도 못 받고 추운 겨울 길 바닥에 나앉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집 주인 : 그분이 보증금 3천 5백인가 얼마를 다 뜯기셔서 돈이 없다고 그러셔서,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로 살아라.]

이런 상황에서 큰 딸은 뇌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까지 돌보게 된 겁니다.

그러나 큰 딸은 언어 사용이 불편해 일을 구하기 힘들었고,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은 남편이 공장에서 벌어오는 월급 10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포천시 관계자 : (남편이) 지적장애 3급이시고 지체하지관절장애 6급이세요. (장애 연금이) 한달에 11만 2천 8백원. (딸이) 언어장애 4급.]

처지는 딱했지만 마땅히 손 벌릴 곳도 없었습니다.

다른 말기암 환자의 가족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할까.

[김선희/말기암 환자 보호자 :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같이 옆에서 가족들이 있어줘야, 최후까지 있어줘야 하는 것이 가족이고.]

이번 사건이 보도되자 존엄사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신현호/변호사 : 이번 사건은 사기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비의학적으로 비윤리적으로 사망시켰기 때문에 전형적인 존엄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의료 복지 사각지대 문제도 지적합니다.

이 씨처럼 치료비가 없어 가정에서 임종을 맞는 말기암 환자들은 별 도움을 못받는다는 겁니다.

[허대석/서울대 종양내과센터 교수 : 무의미한 연명 의료는 건강보험에서 끝 없이 지원해주는 반면, 집에서 임종하는 말기암 환자에 대해선 건강보험이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 모두를 패륜 살인범으로 만든 이번 사건.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무얼 해야 하는 건지, 함께 답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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