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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만에 풀린 강제징용의 한…'지연된 정의' 재확인

입력 2018-11-29 13:36 수정 2018-11-29 13:39

피해자 대부분 사망하거나 병환 중…법원의 뒤늦은 '배상책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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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대부분 사망하거나 병환 중…법원의 뒤늦은 '배상책임 인정'

74년 만에 풀린 강제징용의 한…'지연된 정의' 재확인

일제 시절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본 할아버지들이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지 18년 만인 29일 최종 승소했다.

여자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한 할머니들도 2012년 소송을 낸 지 6년 만에 이날 대법원 확정판결로 배상을 받게 됐다.

1944년 일제에 끌려가 모진 강제노동을 당하며 청춘을 보낸 억울함을 74년 만에 조금이나마 위안받게 된 셈이다.

하지만 정작 대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린 이날 상당수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 선고 결과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1944년 9∼10월 일본 히로시마 구(舊)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정창희(95) 할아버지 등 6명은 2000년 5월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 기간에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당시만 해도 이미 고인이었던 박창환(1923년생) 할아버지를 제외한 정창희, 이병목(1923년생), 김돈영(1923년생), 정상화(1923년생) 이근목(1926년생) 할아버지가 모두 직접 소송에 참여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더뎠다. 1심 재판부는 소 제기 7년만인 2007년 2월 "불법행위가 있는 날로부터는 물론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부터 기산하더라도 소송청구가 그로부터 이미 10년이 지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며 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이듬해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뒤늦게 대법원이 2012년 5월 "청구권이 소멸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 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고, 이듬해 7월 다시 열린 2심에서 미쓰비시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정창희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대법원이 5년이나 재판을 지연하다가 뒤늦게 승소를 확정했지만, 소송을 제기한 지 18년이 훌쩍 지나간 뒤였다. 이 과정에서 한·일 외교관계를 의식한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이른바 '재판거래' 때문에 고의로 재판이 지연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10월 소송을 제기해 2015년 6월 광주고법에서 승소했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는 데는 3년이 넘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동안 김중곤(94), 박해옥(88), 이동련(88) 할머니가 병환으로 입원했고, 김성주(89) 할머니와 양금덕(87) 할머니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더딘 재판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대상이 아니고, 미쓰비시가 소멸 시효 완성을 주장해 배상책임을 거절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강제징용 사건의 부당함을 사법적으로 가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판결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지난달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 측의 배상 책임이 확정된 이후로 동일한 취지의 확정판결이 잇따랐지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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