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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데스노트'와 악성댓글 부장판사

입력 2015-02-14 19:46 수정 2015-02-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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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데스노트'와 악성댓글 부장판사


일본의 유명 만화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히트를 기록한 '데스노트(Death Note)'란 작품이 있습니다. 12권짜리 장편 작품인데 일본에서 권당 250만부씩 총 3000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데스노트'는 겉보기에는 보통 종이공책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의 이름을 쓰면 실제로 그 사람이 죽는 신기한 노트입니다. 야가미 라이토란 극중 주인공이 죽음의 사자로부터 우연히 이 노트를 손에 넣게 되죠. 이후 라이토는 전지전능한 '정의의 심판자'를 자처하고 범죄자를 단죄합니다. 그러나 결국 타락합니다.

주인공은 처음엔 법망을 빠져 나가는 숨은 범죄자를 처단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공정한 심판을 내립니다. 낮에는 소위 엘리트 학생으로, 밤에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심판자로 일하죠. 하지만 점점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는 영웅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죗값이 가볍거나 무고한 사람에게도 심판을 내리기도 하죠. 라이토와 라이토를 막기 위한 상대 진영과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7년간 수천개의 악성 댓글을 단 이모 부장판사를 취재하면서 이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가 떠올랐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최고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사법연수원 성적도 최상위권 입니다. 이른바 엘리트 법관의 코스를 밟았습니다. 연수원 동기들은 적어도 겉으론 문제를 일으키거나 20여년에 가까운 판사 생활중 흠결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판사의 마음속 깊은 곳엔 진보성향 인사나 호남 등 특정지역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미움이 자라났습니다.

"나는 정의를 위해 일한다. 국민들은 무지하다"는 식의 오만함도 갖게 됐습니다. 그런 그의 오만함은 수천개의 편향된 댓글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익명성에 기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데스노트'쯤으로 여긴 겁니다.

국민들은 이 부장판사의 단순한 일탈로만 이 문제를 보지 않습니다. 실제 재판에 영향을 줬을지 걱정이 되는 거죠. 이 부장판사가 민감한 정치 사안이나 특정지역 관계 사건에서 공정하게 재판했을지 우려되는 것입니다. 데스노트의 주인공이 보였던 오만함과 비슷하게, 이 부장판사가 자신만의 잣대로 재판을 해온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법관 인사관리에 변화를 줄지 관심이 높습니다.

한번 법관이 되면 거의 정년이 될 때 까지 자리를 보장받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는 이상 법관은 파면되지 않고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정직, 감봉 등의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판사 인사관리로는 제2의 이 판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9년전인 2006년 법조 브로커에게서 1억원을 받아 구속 기소된 조모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있었습니다. 현직 부장판사가 크게 사건을 일으켜 문제가 됐던 대표적 사례죠. 당시 대법원은 검찰 수사 중에 사표를 수리해 징계는 따로 받지 않았습니다. 형사 문제가 결부됐는데 봐주기식 조사를 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죠.

이후에도 판사들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지만 법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그때 그때마다 비위 감찰을 강화하겠다고 개선 대책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법관의 품위손상과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온 감찰 강화만으론 부족하고, 교육과 인성검증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사법부가 사태초기에 보인 소극성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취재진은 11일 오전 수원지방법원을 찾아갔습니다. 사실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법원 관계자는 본인에게 확인해봐야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결국 이 부장판사가 댓글을 올린게 맞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나서야 'JTBC가 의혹을 제기한 글을 이 판사가 올린게 맞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취재진과 수원지방법원 관계자가 직접 만난 자리였는데, 중간에 어느 곳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내용을 모두 확인해놓고도 부인하려 했던 겁니다.

대법원의 대응도 미숙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제를 확인했으면 엄중하게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게 대법원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이는 뒤로 밀어두고 어떻게 익명의 글이 이 부장판사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이 됐고, 언론사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습니다. 사태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법원이 이렇게 허술하게 대응하는 사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 부장판사가 갑자기 휴가를 내면서 선고예정이던 10여건의 사건이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게다가 관계자에게 제대로 재판취소 통보도 가지 않았습니다. 한 사건 관계자는 이 판사의 휴가로 재판이 취소된 것도 모르고 법정에 나갔다가 헛걸음을 했다고 기자에게 제보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데스노트(Death Note)'의 주인공처럼 일그러진 생각에 휘둘리는 법관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우리 법원이 신분보장에만 치우친 인사방식을 개선해 교육과 인사검증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을 하면 좋겠습니다.

백종훈 기자 iam100@joongang.co.kr

사진=영화 '데스노트' 스틸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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