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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1등 기업 삼성에 '일상' 노조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20-06-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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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1등 기업 삼성에 '일상' 노조가 필요한 이유

"삼성 직원들 혜택이 얼마나 많은데 노조가 왜 필요하냐."
"사사건건 회사 발목 잡는 게 노조라는 XX들이다."
"무노조 경영 하겠다는 회사 싫으면 직원이 나와야지."

지난 22, 23일 삼성의 노사관계를 진단한 제 기사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삼성 노조 취재를 시작한 건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정말 달라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취재해보니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삼성 임직원들의 의식에 있었습니다. 입사 때부터 교육 받은 "노조가 들어서면 회사가 망한다"는 신화는 머릿속 깊이 뿌리 내려 있었습니다. 이제 노조 설립을 과거처럼 방해할 순 없지만, 여전히 노조원을 'MJ'(문제 인력)로 보는 시각은 위 기사들에서 보듯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노조를 괴물처럼 보는 이 시선은 뉴스 댓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보통의 시민들의 생각 속에, 노조는 글로벌 1등 기업 삼성의 발목을 잡는 불온하고 성가신 존재였습니다. 이런 선입견에 대해 현장에서 보고 느낀 사실을 전달하고자 이 취재설명서를 쓰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맨'의 이미지는 고액 연봉과 보너스를 받고 온갖 복지 혜택을 누리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런 직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 하면서 만난 대다수의 삼성 노동자는 평범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에어컨을 수리하는 기사, 삼성물산의 골프장과 에버랜드를 관리하는 직원, 전국의 웰스토리에 일하는 급식노동자 등도 모두 '삼성맨'이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댓글 단 여러분과 다를 게 없는 보통의 노동자가 삼성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노조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순간을 물어봤습니다.
 

회사를 무사히 다닐 땐 몰랐다. 회사가 처음 내게 찾아왔을 때 깨달았다. 삼성엔 노조가 없단 걸.


회사에서 어느 날 전국의 어린이집 명단을 줬답니다. 일일이 찾아가 어느 회사의 TV를 쓰고 있는지 묻고, 명함과 인증샷을 찍어오라고 했습니다. 맡고 있던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 지시, 즉 나가라는 압박이었습니다. 굴욕적이지만 참고 했답니다. 돌아온 건 최하등급의 인사 고과, 임금 삭감이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가 내게 찾아오는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회사가 경영 사정을 이유로 내년 임금의 동결을 요구할 때, 계약서에 사인 하지 않을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요. 정보와 조직력을 갖춘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 개인이 회사의 수익과 자신이 기여한 성과를 분석해 임금 인상을 얻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동의 없이 출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점심 시간을 줄일 때, 특근 수당을 못 주겠다며 업무 시간 내에 해결하라고 할 때 등도 마찬가집니다.

이럴 때 노동자가 대응하는 방법은 함께 고민하고, 뭉치는 것뿐입니다. 노동3권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인 것은 막강한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가 뭉쳐야 그나마 대등하게 회사와 대화할 수 있단 걸 뜻합니다.

하지만 노조의 활동이 뉴스 등 미디어에 노출될 때는 파업 등 최후의 수단으로 협상을 할 때입니다. 이렇다보니 시민들에게 노조는 시끄럽고 불편을 끼치는 단체로만 기억에 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노조 활동의 대부분은 굉장히 일상적입니다. 임신했을 때나 다쳤을 때 얼마나 쉴 지, 경조사는 어떻게 챙길 지, 휴식 시간은 얼마나 갖고 휴게실의 공간은 얼마나 돼야 하는지 등입니다. 직원들에게 일할 때 불편한 점을 듣고 회사에 전달해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노조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실 노조가 지난한 교섭 끝에 따낸 소소한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삼성에도 이런 일상적인 노조 활동이 먼저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 첫 출발로 삼성전자 사옥 안에 노조 사무실이 생기길 바랍니다. 여전히 '삼성맨'들이 강남역 스터디룸, 면사무소 등을 빌려서 회의 하고 있는 건 1등 기업의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죠. 사랑방처럼 노조 사무실을 드나들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게 마음에서 편해진다면 임직원 머릿속에 각인된 '무노조 경영'이란 신화도 갈수록 희미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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