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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정말 과학이 막연한 공포를 이겼을까?

입력 2017-10-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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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정말 과학이 막연한 공포를 이겼을까?


지난 7월 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할 때만 해도 '공론화'란 단어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과연 비전문가들인 시민들이 모여 정책을 권고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 우리 사회를 움직인 촛불의 힘과 광장의 목소리를 떠올려보면 마냥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닐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나 공론화위가 구성한 시민참여단은 '절묘한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하되 탈원전 정책으로 나아가는 길로요. 뜨거운 여름이 지나 가을을 맞이한 지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함께 했던 89일을 정리해 봅니다.

1. '답정너', '기울어진 운동장', '보이콧'…파란만장 공론조사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재개 여부를 공론조사에 맡기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답정너'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공사 중단이라는 답은 정해져있고 공론화위원회는 대답만 하면 돼" 라는 뜻이었습니다.

특히 전문가(원자력 학계)와 이해당사자(한수원과 지역 주민)를 배제하고 일반 시민들을 추려 참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에 대해 '인기투표'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우려와 반발 속에 시민참여단이 참여했지만 제공할 자료집과 동영상 강의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건설 중단 측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며 보이콧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은 공론조사 기간동안 이어졌습니다.

2. 답답할 정도로 모든 과정이 비공개…발로 뛴 출구조사 결과는 '건설00'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명단은 비공개였습니다. 심지어 대외 활동 대부분이 비공개였습니다. 공개하게 되면 '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공론화위원회의 입장이었습니다. 공론화위원회는 답답할 정도로 취재기자와 시민참여단과의 접촉을 막았습니다.오리엔테이션이 있었던 지난 9월 16일, 시민참여단을 직접 만나 나름대로의 여론조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천안아산역에서 무작정 기다려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타려는 참여단 8명을 만나봤습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분, 시간을 쪼개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분. 그들의 얼굴은 굉장히 밝고 목소리는 힘찼습니다. 어쩌면 먼 이야기일 수 있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 논의를 나의 이야기처럼 여겼습니다. 조사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예상과 달리 건설을 재개해야한다는 분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건설 재개 6명, 유보 입장 2명이었습니다. 유독 천안아산역에서 가신 분들이 건설 재개 쪽이 많았던 걸까요? 아니면 1차 여론조사 결과에서부터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었던 걸까요…시민참여단의 마음을 더욱 알 길이 없었습니다.

3.원자력 전문가는 1명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대표 단체는 ''신고리 백지화 시민행동'입니다. 반대 측인 건설 계속 대표 단체는''한국원자력산업회의'였습니다. 시민행동은 환경단체가 중심인 반면. 원자력산업회의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과 원전 관련 대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인적 물적으로 봐도 대등한 관계는 아닌 듯합니다. 또 2박 3일 합숙 토론 때 토론자를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건설 재개 쪽엔 원전 전문가와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이 두루 포진해 있습니다. 반대로 건설 중단 측에는 원전 전문가가 단 한 명 뿐이었습니다. 원전과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과 객관적인 자료, 또 이를 시민참여단에게 전달할 전략을 짜기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건설 중단 측은 싸워야 하는 건 '원자력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배우고 자라왔던 과거의 시간들과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공급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는 언론의 공세였습니다.

4. "10%p 이상 차이 날 것 같은데요?" 압도적인 차이 예견한 시민참여단

철저한 보안 속에 4차 최종 조사 결과는 당일에야 공개됐습니다. 제가 취재한 여러 전문가은 최종 결과가 '유보' 아니면 '박빙 속 건설 재개'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전날 실시된 일반 여론조사도 박빙이었죠.

그런데 시민참여단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때 만났던 시민참여단 8명은 한 달 동안의 숙의 과정 끝에 모두 '건설 재개'로 응답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유보라고 답했었던 2명 마져 건설 재개로 돌아섰던 거죠. "다른 시민참여단은 어떻게 대답했을 것 같으세요?"라는 질문의 답은 더 뜻밖이었습니다. 10%p 이상 큰 차이로 건설 재개 쪽일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시민참여단은 압도적인 건설 재개를 예견했던 거죠. 한두 분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놀라웠습니다. 이제껏 여론 조사에서도 오차 범위 내로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이 박빙을 이뤘기 때문에 의아했습니다. 게다가 시민참여단의 활동을 지켜본 전문가도 유보와 박빙으로 예견했기 때문이죠. 뚜껑을 열어보니 전문가의 '감'보다 시민참여단의 '감'이 맞았습니다.

5.시민참여단을 움직인 마지막 10분…'애국심' 정조준

4차 최종 조사를 앞둔 마지막 10분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습니다.실제 이때 결정을 굳혔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시민참여단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것은 바로 건설 재개 측의 마지막 발표였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건설 재개 측 마지막 발표자는 장현승 한수원 원전수출처 체코 사업 추진팀장이었습니다. 발표 자료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사진 몇 장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감성적인 부분을 톡톡 건드렸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잊지 못할 짜릿한 순간이 있죠.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입니다. 2009년 UAE 원전 수주 소식이 그때처럼 기뻤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해외에서 손꼽히는 원전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선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돼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한 시민참여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설 재개 측이 얄미울 정도로 영특했다"라고요.

숫자의 논리에선 원전 전문가가 포진돼 있는 건설 재개 측이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은 끊임없었습니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부분까지 건드렸던 건설 재개 측, 그래서 시민참여단은 압도적인 차이로 건설 재개 쪽을 예견했었나 봅니다.

6. 공론조사 앞으로도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의원은 이번 공론조사에 대해 '절묘한 결론'이라고 평했습니다. 전문가에게만 맡여놨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을 거란 거죠. 원전만의 승리 혹은 신재생에너지만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도 공론조사는 다른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시민참여단은 대체로 공론조사가 공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또한 지적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는 거죠. 게다가 팩트 체크도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건설 중단의 주장이 맞는지 건설 재개의 주장이 맞는지 비전문가로서 결정하기 힘들었다는 거죠. 차라리 공론조사를 할 거면 우리 곁에 있는 주제에 대해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민생 치안, 이런 것들요. 그런 주제로 공론조사를 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방침에 따른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확정했습니다. 신규 원전 계획은 백지화 하고 2038년까지 원전은 14기로 감축할 예정입니다. 원전과 에너지 수급 문제는 다음편에 덧붙여서 쓰겠습니다.

원자력계는 이번 결과를 두고 과학이 막연한 공포를 이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공포는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학이 가야할 곳은 막연한 공포를 없애는 길입니다. 공사 재개에 표를 던졌던 한 시민 참여단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과거처럼 원전 사고 덮고 가면 안 됩니다. 작은 사고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겁니다."라고요. 시민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 졌습니다. 원자력계가 이겼다고 칭하는 '막연한 공포'는 사실 쉬쉬 덮고 넘어간 그동안 행태 속에서 그들이 키워왔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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