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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베이고 털리고…'가을 악취' 은행나무 수난시대

입력 2020-10-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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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을을 알리는 노란 은행나무 하면 보기엔 좋은데 가까이 가긴 싫다는 분들 계시지요. 열매 냄새 때문인데요. 은행나무가 공기도 맑게 해주고 좋다고 심었지만, 이젠 베이고 털리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밀착카메라 홍지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인천 시내의 한 길가입니다.

바닥에 벌써부터 은행나무 열매가 밟히고 터진 흔적이 보이는데요.

해마다 더럽다, 냄새난다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지금은 열매를 미리 떨어뜨려 수거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열매 털이가 시작됐습니다.

삽 대신 커다란 집게가 달린 굴착기가 나무에 다가갑니다.

기둥을 붙잡습니다.

흔듭니다.

열매가 떨어집니다.

자리를 옮겨 가며 계속 흔듭니다.

떨어진 열매들이 바닥을 가득 메웁니다.

비닐봉지에 주워 담습니다.

[전형철/인천 남동구청 공원녹지과 : 하루 보통 한 100그루 정도 하죠. 먼저 익은 게 떨어지면 사람들이 다니고, 밟고 해서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5분에 한 그루씩 텁니다.

나뭇잎과 잔가지까지 떨어집니다.

껍질이 벗겨지기도 합니다.

[정영준/인천 남동구청 공원녹지과 : 톱신이라고요, 나무 상처가 난 부위를 치료해주는 거예요. 치료 안 하면 죽어요. (만약 사람에 비유한다면?) 피부가 망가진 거죠.]

재빨리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쌉니다.

은행 열매는 익을수록 노란 빛깔을 띱니다.

문제는 덜 익은 초록색 열매인데요.

기계를 써도 잘 안 떨어져서, 장대로 일일이 쳐서 떨어뜨립니다.

기자가 직접 해봤습니다.

가지를 장대로 내려쳐도, 열매는 끄떡없습니다.

[박민재/인천 남동구청 공원녹지과 : 열매들이 아직 안 여물어서 그래요. (안 여물었군요.) 며칠 있다가 다시 와서 털면 그때는 떨어져요.]

이처럼 지자체들이 은행나무 열매를 미리 털고 있습니다.

서울시, 대구시는 지난달에 열매 채취를 마쳤습니다.

심지어 벌목을 검토하기도 합니다.

한 대학교 앞의 길가입니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은행나무들 전부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들입니다.

이곳에만 100그루 정도 더 있는데요.

30년 넘게 제자리를 지켰지만, 지금은 전부 베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관할 구청은 옮겨 심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마땅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인천 미추홀구청 공원녹지과 : 딱히 나무를 옮겨 심을 데는 없고. 나무들이 30년 이상 된 나무들이어서… 뿌리가 어떻게 뻗어 있을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사실상 이식은 어렵습니다.]

수원에서는 교체 대상인 암나무 중 일부에 나사못이 박혀 논란이 됐습니다.

[최태석/경기 수원시 매탄동 : 압정을 왜 박아 놨어요? (표시하려고요.) 누가요? (수원시청에서요. 암나무라는 걸 표시하려고.) 아아…]

손으로는 뺄 수 없게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김혜성/경기 수원시 매탄동 : 별로 보기에는 안 좋은데, 필요가 있어서 해 놓지 않았나…]

[장시열/경기 수원시 매탄동 : 다르게 끈을 묶는다든지 그렇게 해도 될 거 같은데…]

시에서는 암나무를 구별할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왜 은행나무 중에서도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를 많이 심었을까.

사연은 은행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연에 강하고, 도시 경관에 좋은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꼽혔습니다.

[이제완/국립산림과학원 박사 : 플라타너스라고 흔히 알고 있는 나무를 기존에는 많이 심었었는데. 수명도 짧고, 너무 크게 자라기 때문에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그러나 암나무인지 미리 구별해 심을 수 없었습니다.

묘목이 20~30년 자라, 열매를 맺은 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1980년 10만 그루에서 지금은 100만 그루까지 늘어난 은행나무 중에서 적게는 1/3에서 절반까지도 암나무로 추정됩니다.

2011년 은행나무의 성을 감별하는 유전자 검사법이 개발되자 지자체들이 앞다퉈 검사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수백 년 동안 살았거나, 문화적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돼 지켜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로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은행나무를 없애지 않고 보존하기도 합니다.

전남 장성군 동화면입니다.

한때 마을 인도를 빽빽이 채웠던 은행나무들, 지금은 모두 뽑혔습니다.

[노구섭/전남 장성군 구림리 : 나무 뿌리가 집까지 해가지고 울퉁불퉁 땅이 안 좋아서…(은행나무) 악취 냄새가 좀 심했죠.]

대신 인근 강가로 옮겨졌습니다.

이식을 위해 뿌리와 몸통만 남겨져 있습니다.

가지가 다시 자라려면, 3년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은행나무는 공기를 맑게 해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지막 잎새 하나까지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습니다.

2020년, 못 박히고, 잘리고, 옮겨지고 짧게는 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까지 우리 곁을 지킨 은행나무들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필요해서 심었고, 악취보다 남아있는 순기능이 많다면 공존할 방법을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VJ : 박선권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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