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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영화 촬영지로 집값 '훌쩍'…내몰리는 주민들

입력 2020-11-05 21:24 수정 2020-11-0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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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면 그 뒤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죠. 금세 관광 명소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유명해지면서 되레 원래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마을의 본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이어지는지, 밀착카메라 홍지용 기자가 전국 곳곳의 영화 촬영 명소들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부산 영도대교에 나와 있습니다.

제 뒤에 보이는 영도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부산의 옛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는데요.

그런데 섬이 인기를 끌수록,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다리 너머에 있는 부두에서부터,

[촬영하는 사람들이 저기 (왔어요.) (어디 부근에서 촬영했어요?) 여기, 저기.]

올해도 이미 여러 작품을 찍었습니다.

섬 안쪽으로 가면 6·25전쟁의 피란민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일부를 정비해 영화를 찍으면서 명소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단장한 건물들이 많습니다.

[저희 생긴 지 얼마 안 됐어요. 반년도 안 됐어요.]

스무 곳이 넘습니다.

[2017년에 영도에 왔을 때, 여기 왔을 때 두 카페만 있었어요. 작년부터 올해, (카페가) 좀 많이 생기고…]

주민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김갑숙/흰여울마을 주민 : 고무바닥 있죠. (겉보기에) 억수로 좋죠? 시멘트는 물로 청소하면 물이 내려오잖아요. 보이소. 스며들잖아. 이건 잘못된 거예요.]

삶의 터전인 마을이 갑자기 관광객을 위한 카페 골목으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윤미아/흰여울마을 주민 : 저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랐거든요. 46년 정도. 흰여울길 쪽으로는 집이 비었다 하면 바로 판매가 되듯이 그렇게 되고요.]

5년 새 주민 600여 명 중 1/3 정도가 떠났습니다.

영화 변호인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주택입니다.

주말이면 사진을 찍느라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이곳 마을의 안내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촬영 이후 안내소로 고쳤는데, 최근 집 주인이 직접 쓰겠다고 알려온 겁니다.

[송정옥/흰여울안내소 해설사 :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마음도 좀 아프죠. 땅값이 오르다 보니까…]

마을 주변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근 부동산 : 7, 8년 전에는 바닷가 보이는 데 거기 평당 500만원 정도엔 계약을 했었어요. 지금은 막 바다 전망 보이면 (평당) 2000만원도 부르고.]

주민들은 동네를 계속 지키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도심 부근에도 사라져가는 마을이 있습니다.

바다를 매립한 땅 위에 놓인 판자촌, 1960, 70년대의 모습이 남은 덕에 영화 촬영의 단골 장소로 꼽혔습니다.

마을로 향하는 육교에는 이곳에서 찍은 영화들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섰고, 마을은 작아지고 있습니다.

600여 세대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도 재개발이 더 진행되면, 떠날 예정입니다.

[A씨/매축지마을 주민 : 거의 보면 재력이 없어요. 4평, 3평, 7평, 이런 집들은 돈이 없어서 (재개발 후) 분양을 못 받아요. 외지 사람이 사는 게 3분의 2 정도…]

수십 년간 살아온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B씨/매축지마을 주민 : 주인들이 왜 그러냐 하면, 어차피 (나머지도) 재개발될 거니까 (집을) 안 고쳐주려고 해. 어르신들 보면 (집이) 안 뜯기는 게 낫고.]

지역 주민을 위한 복지 활동에 나선 시민단체도 마을 일대가 사유지여서, 누가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합니다.

[안하원/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 이사장 : 옛 정취, 살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마을을) 예쁘게 꾸미고, 실행되기는 했었는데…집주인들, 그 사람들은 개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어요.]

옛 모습을 지키려는 이들도 달리 방법이 없어 아쉬운 마음만 큽니다.

50년도 더 전에 생긴 인천의 배다리헌책방 거리입니다.

주변의 재개발 흐름 속에서도 서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30년 전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주변에 근대 교육기관이 들어섰고, 차츰차츰 책방, 여인숙 등이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초 인천시가 남쪽의 송도와 북쪽의 청라지구를 곧바로 잇기 위해,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화도로를 놓기로 계획했습니다.

도로가 놓이면 떠나야 하는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투쟁했고, 10년 넘게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옛 거리가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되어, 다시금 관심을 받았습니다.

[곽현숙/아벨서점 대표 (전 '배다리위원회' 대표) : 상생이나 공존이 아니라 밀어내 버리는 작업이잖아요. 지금으로서는 존치 지구로 됐지만, 아직 100%로는…]

단순히 주거와 생업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곽현숙/아벨서점 대표 (전 '배다리위원회' 대표) : 여기 전체 동네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살았던 어떤 게. 떠나면 벌써 (사람) 마음 반은 죽어요.]

민·관 협의 끝에 도로는 지하로 놓고, 마을을 지키는 방향으로 개발의 가닥이 잡혔습니다.

명소로 알려지고, 개발되고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조명받으면서 겪는 일입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보존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해법을 논의할 시점입니다.

(VJ : 박선권 / 영상그래픽 : 이정신 / 인턴기자 : 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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