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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입력 2020-03-23 11:08 수정 2020-06-05 10:5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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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

이번 주로 18번째 이어지는 취재설명서뿐 아니라 다른 기후변화 관련 기사에서 매번 강조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온실가스를 사고파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시장'입니다. 대기오염물질을 내뿜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라고 하면서 시장이 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온실가스 시장은 먼 나라의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장은 올해로 벌써 6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바로, 2015년부터 도입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입니다. 이 때부터 사업장들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거나 팔고 있습니다. 뿜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배출'권'이라고 권리까지 주고, 그걸 또 사고 팔 수 있게 한 거죠. 얼핏 주인 없는 대동강 물을 팔아치운 '봉이 김선달'이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상은 이렇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GHG ETS, Green House Gas Emission Trading Scheme)은 교토의정서를 통해 처음 국제사회에 소개됐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우리가 최근 '파리협정'을 자주 듣고 있죠.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고, 그 총회의 결과 국제사회가 온난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이행 방안이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교토의정서입니다.

여러 제안들이 담겼는데, 이중엔 ETS(Emission Trading Scheme, 배출권 거래제)도 있었습니다. 대기오염물질, 특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양을 정해놓되 배출 주체들이 유동적으로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배출량에 대응토록 하자는 거죠. 한 나라가 정해둔 전체 배출량 목표는 지키면서 개별 기업들에 미칠 악영향은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한국환경공단은 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사업장간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업체의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유도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자료: 한국환경공단)


이미 우리나라의 ETS는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을 지나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의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제도가 안착됐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인 거죠. 하지만 거래제에 참여하는 주체가 일반 시민이 아닌 기업, 사업장들이다 보니 벌써 제도 도입 6년차임에도 대중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한국거래소를 통해서 공식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죠.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많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관련 언론 보도 역시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단위 배출권을 할당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기본적으로 사업장들은 그 범위 안에서 배출을 해야 하고, 여분이나 부족분을 거래하는 겁니다.

그럼 여기에 참여하는, 다시 말해 정부로부터 "올해는 이만큼만 뿜어내세요"라며 배출권을 할당받는 업체가 얼마나 될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자료: 한국환경공단)


일단, "적용대상은 계획기간 4년 전부터 3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연평균 총량이 12만 5000톤 이상 업체 또는 2만 5000톤 이상 사업장의 해당업체, 자발적으로 할당대상업체로 지정 신청을 한 업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입니다. 이를 보다 간단히 정리하면, 공장의 가동률이 경기에 따라 들쭉날쭉 할 수 있지만, 해마다 평균 2만 5천톤 넘는 온실가스를 뿜어내면 할당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온실가스 배출량'이란, 단순히 탄소 배출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이렇게 6가지 항목이 관리대상물질입니다.

해마다 ETS 시장 참여자들은 늘어갔습니다. 그만큼 제도가 자리를 잡아갈뿐더러, 기준을 초과하는 사업장들이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제도 도입 첫 해, 525개였던 대상 업체는 1차 계획기간 마지막엔 592개로 늘었고, 2차 계획기간 609개 업체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자료: 한국환경공단)


해마다 배출 할당량을 낮춰서 국가 차원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목표였지만 앞서 꾸준히 취재설명서를 통해 전해드린 대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었습니다. 그냥 늘어난게 아니라 해마다 '역대 최고'를 경신해왔죠.

이러면서 자연스레 ETS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는 커졌습니다. 배출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권리'인 만큼, 정부가 임의로 지구를 파괴할 권리를 줄 수 있느냐는 원론적인 비판부터, 이 배출권의 97%를 기업들에 '무상 할당'하고, 3%만 '유상 할당'하면서, 기업들은 전에 없던 '돈벌이 수단'이 생겼다는 지적까지 나왔습니다.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게 됐는데, 이 거래 수단을 공짜로 주고, 나중에 서로 값을 매겨 사고팔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거죠. 이러면서 ETS는 마치 대동강 물에 대해 갑자기 소유권을 주장하고 돈 벌이에 나선 '봉이 김선달'의 현대판처럼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2015~2017년까지 1차 계획기간 동안엔 여기에 참여한 기업들에게 할당량의 100%를 무상으로 지급했습니다. 2차 계획기간엔 유상 할당 비율을 소폭 늘렸습니다. '유상 할당 업종'으로 구분 된 기업들에 무려 3%를 유상 할당한 겁니다. (97%는 무상이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총 거래 현황


대부분의 기업들은 무상 할당 대상으로 분류됐습니다. 바로, ①무역집약도 30% 이상, ②생산비용발생도 30% 이상, ③무역집약도 10% 이상 & 생산비용발생도 5% 이상 이라는 '무상 할당 대상 업종 기준' 덕분입니다. 유상 할당 대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유상 할당 대상이라도 실제 유상으로 할당받는 배출권은 3%에 불과하지만, 내수에만 몰두하면서 대규모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공장까지 여러 개를 쉴 새 없이 가동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주요 산업들은 수출 비중이 높습니다. '유상 할당'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이유입니다.

ETS 도입 6년차.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배출권 거래시장은 분명 자리 잡았습니다. 거래량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겁니다. 물론, 600여곳에 불과한 할당업체 수는 EU-ETS의 1만 1천여곳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EU가 우리보다 약 10년 앞서 ETS를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ETS는 규모가 작더라도 정착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온실가스 사고파는 시장…현대판 '봉이 김선달'? 온실가스 배출량이 해마다 기록 경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ETS의 본래 존재의 목적에 비춰보면, 어떤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까요. 저렇게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ETS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우선 정부는 현재까지의 ETS에서의 문제점을 토대로 2021년부터 시작되는 3차 계획기간엔 보다 진일보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진 할당대상업체 수 자체가 600여곳으로 너무 적었고, 거래량은 증가했으나 거래 대부분이 배출권 제출 마감 기한에 집중돼 평시 거래량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어땠을까요. 다음 계획기간에 주어질 할당량에 대한 불안감에 배출권이 남는 업체들도 이를 매도하기보다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자칫 거래를 해서 배출권을 팔았는데, 막판에 다시 배출권이 필요해지면 어떡하나 불안감이 컸던 겁니다. 또, 대규모 거래는 장내거래보다 장외거래를 통해 이뤄진 것을 보면 기업들 입장에선 배출권 거래 자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정부는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엔 시장 참여자를 늘리고 여러 상품을 늘린다는 방침입니다. 할당대상업체만 참여할 수 있었던 ETS 시장에 금융기관이나 개인 등 제3자의 시장 참여를 허용한다는 겁니다. 또, 장내 선물거래제도를 도입하는 등 파생상품을 도입해 장내 거래를 보다 활발히 만들고, 배출권의 가격 발견기능도 더 키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입니다. 사실 이러한 계획이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저감'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입니다.

그동안 ETS는 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민사회의 관심 없이(그 덕에 언론의 타이트한 감시도 없이) 굴러왔습니다. 그 사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곧 늘어왔고요. 2차 계획기간 마지막 해인 올해, 그리고 다가올 3차 계획기간, 시민사회의 큰 관심과 응원, 그리고 감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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