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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 '차붐 부자', 차범근도 첫 아시안컵은 '멘붕'이었다

입력 2015-01-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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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 '차붐 부자', 차범근도 첫 아시안컵은 '멘붕'이었다차범근 위원(오른쪽)의 현역 시절 위상을 보여주듯 그의 서재에는 수많은 상패와 트로피가 전시돼 있다. 차 위원이 아들 차두리와 K리그 트로피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트로피는 차두리가 2014시즌 베스트11에 뽑혀 수상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차 위원이 수원 감독 시절이던 2004년과 2008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받은 감독상이다.


"야. 이렇게 너랑 같이 사진찍는 게 얼마만이냐."

"아빠랑 CF 촬영하는 거 같네요."

차범근(62) 전 SBS 해설위원과 아들 차두리(35·FC서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부자는 웃음도 꼭 닮았다.

"아버님! 아니지 위원님이라 해야지. 위원님. 현역 시절 득점한 직후처럼 오른팔을 번쩍 들어주세요."

사진 기자의 요청에 두 사람은 마주보며 또 한 번 폭소했다. 지난 12월 24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차붐 부자를 만났다.

◇ 아시안컵

'차붐' 부자는 아시안컵과 깊은 인연이 있다. 1972년 태국 아시안컵 때 차 위원은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 18세 11개월로 아시안컵 최연소 출전이었다. 이 기록은 2011년 도하 아시안컵에 나선 18세 6개월의 손흥민(22·레버쿠젠)에 의해 깨졌다. 차 위원은 크메르(캄보디아의 전 이름)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장식했다. 한국은 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차두리는 울리 슈틸리케(60·독일) 감독이 이끄는 호주 아시안컵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에게는 세 번째 출전이다. 2004년 중국 대회 때는 공격수로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득점을 올렸다. 한국은 8강에서 이란에게 3-4로 져 탈락했다. 2011년 카타르 대회 때는 오른쪽 수비수로 변신해 한국이 3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숙적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 차 위원님은 1972년 아시안컵이 기억 나시나요.

차범근(이하 범) : 그럼. 그 때 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청소년 대회 끝나고 바로 대표팀에 뽑혔어. 조 편성 경기(당시는 조 편성 경기가 있었음. 한국은 이라크에게 승부차기로 패배)에서 내가 PK를 놓쳤지. 방콕의 5월이 얼마나 무더워. 청소년 대회를 했으니 다 적응됐을 거라면서 선배들이 나보고 차라는 거야. 근데 못 넣었지. 쿠웨이트(조별리그 2차전 1-2 패) 경기도 생각나네. 한 명을 제치면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치고 나가다가 뺏겼는데 실점으로 연결된 거야. (이)세연(당시 골키퍼)이 형이 어찌나 화를 내던지. 그 때는 선배들이 참 무서웠거든. 한 마디로 바짝 쫄아 있었지. 아유 고생했어. 내가 볼만 잡으면 이 선배 저 선배 다 공 달라고 하고. 하하.

- 차두리도 2004년 아시안컵 때 처음 참가했죠.

차두리(이하 두) : 독일 시즌 마치고 훈련소 입소해서 4주 훈련을 마친 직후였어요. 본 프레레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훈련소에서 나온 저보고 바로 대표팀으로 오라는 거에요. 훈련소 안에서 공을 한 번도 못차서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평가전(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골을 넣은 거에요. 바로 아시아컵에 갔죠 뭐. 사실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어요.

- 두 분 다 이란에게 졌네요.

범 : 그 때는 이란이나 쿠웨이트 같은 팀들이 유럽처럼 느껴졌어. 걔네를 보면 몸도 크고 어쩐지 잘 할 것 같고. 지금처럼 중동 팀이랑 게임을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심리적인 부담이 있었지.

두 : 저는 알리 카리미가 기억나요. 걔가 해트트릭 했잖아요. 정말 잘 한다 싶었죠. 또 (이)영표 형 쪽에 조그맣고 마른 선수(호세인 카에비)가 있었는데. 야~ 난 영표 형이 상대 선수한테 그렇게 혼나는 건 처음 봤네요. 그래도 우리가 2002년 4강 신화의 자부심이 남아있을 때라 쉽게 안 졌죠. 먹으면 따라 가고 먹으면 따라 갔는데 마지막 골 내주고 만회를 못 했어요.

- 한국 축구가 이란과 악연이 많죠(1996년부터 5개 대회 연속 8강에서 격돌.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4강 이후에 만남).

두 :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란이란 팀이 어렵게 느껴지진 않아요. 4년 전에도 이겼고(카타르 아시안컵 때 윤빛가람의 결승골로 승리), 얼마 전에 평가전에서 졌지만(0-1 패) 우리가 압도당하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범 : 그게 얘네와 우리 세대의 차이점이야.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잖아. 세계에서 가장 잘 한다는 선수들과 매주 붙는데 이란이 왜 두렵겠어. 예전의 그 이란은 아니야. 우리가 겁낼 필요는 없다고 봐.

- 차두리는 4년 전 카타르 대회에서 아쉬움이 많았죠.

두 : 우리 경기력이 워낙 좋았죠. 제가 대표팀 생활하면서 그 때만큼 팀 경기력이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신구 조화가 잘 됐고. 3위 하고 공항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우승이 아닌 3위를 했는데도 이렇게 반겨주고 기뻐하시는구나. 우승만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죠.

- 이번에는 우승할 자신 있나요.

두 : 글쎄요. 4년 전에는 어린 선수들이 배고플 때였어요. (구)자철이 (지)동원이는 유럽 가려고 스카우터들과 협상까지 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애들에게는 매 경기가 정말 중요했고, (박)지성이나 (이)영표 형은 국가대표로 마지막 대회라 모든 걸 쏟아부었죠. 그 때 팀이 참 단단했어요. 이제 배고팠던 그 아이들이 유럽에서 경험을 쌓았죠. 4년 전 배고픔이 실력으로 바뀌었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 위원님은 슈틸리케 감독의 행보를 어떻게 보세요.

범 : 팀을 잘 꾸려가는 것 같아. 시간이 너무 짧고 훈련 기간도 없는 상황인데 한국 축구가 지금 어려워서 결과만 얻으려다 보면 큰 우를 범할 수도 있어서 걱정은 조금 되지. 그래도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잘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 독일 사람의 특유의 모습도 보이지요.

범 : 그럼.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서툴지 않지. 뭐 하나를 해도 무의미한 것이 없고.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하고 그런 모습이 독일 사람의 강점이지.

[신년인터뷰] '차붐 부자', 차범근도 첫 아시안컵은 '멘붕'이었다


◇ 2014년

- 위원님은 아들이 은퇴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어떠셨어요.

범 : 지극히 당연한 고민이지. 나도 서른 여섯까지 선수 생활 했지만 나이를 들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플레이가 분명 있거든. 그런 면에서 보면 선수 생활을 좀 더 하는 게 좋은데 반대로 다른 일을 시작할 시기가 늦어지니까. 요즘 내가 '두리 경기 잘 보고 있다'는 인사를 참 많이 받아. 인사를 받아서가 아니고 두리가 운동장에서 여유도 생기고 감각도 날카롭고 시야도 넓어졌어.

- 차두리가 2014시즌 K리그 베스트11 상을 받으며 '차범근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요.

범 : 두리한테 늘 미안해. 그냥 두리 자체로만 봐야하는데 사람들은 늘 나와 비교하잖아.

두 : 자기가 한 것에 대해 보상 받고 인정받고 싶은 게 선수의 당연한 마음인데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는 참 어렵죠. 아버지란 존재가 늘 뒤에 있으니.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진짜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해요. 저도 처음에는 아버지랑 비교당해서 상처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독일 분데스리가로 가보니(2002년) 차범근이라는 사람의 위상이 느껴지더라구요. 제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걸 알았죠. 사실 모든 선수가 메시나 호날두처럼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죠. 엄마가 그래요. '얘. 한 집안에서 아버지같은 선수가 두 명 나오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니'라고요. 그 말씀이 맞아요.

범 : 축구를 빼면 나보다 두리가 장점이 훨씬 더 많은데….(웃음)

- 위원님은 K리그 감독상을 두 차례(2004년, 2008년)나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수상하는 모습이 뿌듯하셨겠어요.

범 : 그럼. K리그 상을 아무나 받는게 아니잖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만하지. 1년 동안 노력했던 것에 대한 보상 아니겠어.

두 : 저도 뿌듯했어요. 한 시즌을 꾸준히 잘 했다고 인정받은 거니까요.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마지막까지 상을 받을 수 있을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하하.

[신년인터뷰] '차붐 부자', 차범근도 첫 아시안컵은 '멘붕'이었다차범근·차두리 부자는 최용수 감독(상단 맨 왼쪽, 하단 왼쪽)과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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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수

- 두 사람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 FC서울 최용수 감독입니다. 2년 전 차두리가 서울로 이적할 때 위원님은 찬성하셨나요.

범 : 나야 뭐 본인이 간다고 하면 어디든 좋았지. (최)용수가 사람이 참 괜찮거든. 두리가 용수에게 가면 사람 때문에 상처받거나 그럴 일은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

- 최 감독의 리더십이나 지도력을 평가하신다면요.

범 : 선수 때의 용수가 아냐. 감독은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1년 내내 선수들과 생활하는 감독은 속을 다 내보이면 안 돼. 내면을 약간은 감춰야 해. 그래야 선수들이 긴장을 하고 집중력도 높아지고 힘이 나오지. 한 마디로 감독은 자기 패를 다 보이면 안 돼. 그런데 최 감독은 내면을 절제하면서 잘 끌고 가더라고. 사실 작년에 서울 주축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올해 좀 힘들거라 걱정했는데 이렇게 마무리 한 거 보면 대단해.

- 최 감독이 선수 때는 어땠나요.

범 : 우직했지. 물불 안 가리고 의협심이 강하고 투쟁적이고. 용수가 넣은 골을 봐봐. 시시한 골은 없잖아. 다 화끈했지.

- 차두리에게 최용수 감독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두 : 선수 때는 투박하고 무대포인 줄만 알았는데…. 감독으로 만나니 생각도 많이 하시고 선수들 심리도 파악하려고 노력하시고 선수 때와 확실히 다른 색깔이에요. 무엇보다 제일 고마운 것은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손을 내밀어 주신 거죠. 저를 끝까지 서울로 데려오고 싶어 하셨고. 제가 다시 아시안컵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분이 감독님이죠. 그 감사함은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차두리는 12월 27일 FC서울과 재계약에 합의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호주로 출국했다. 최용수 감독의 설득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전언이다. 당시 그는 아시안컵 후 태극마크를 내려놓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이제 국가대표로서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각오로 현재 시드니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joongang.co.kr
사진취재=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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