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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간통죄' 사라졌지만…

입력 2015-02-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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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간통죄' 사라졌지만…


작년부터 서울 서초동 법조계에선 간통죄 위헌 결정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의 위헌관련 소급효과 규정을 작년 5월 개정한 것이 근거였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의 소급효과를 좁혀 간통죄 위헌결정을 위한 '사전포석'을 세운게 아니냐는 변호사들의 관측이 있었던 것이죠.

물론 1990년 이후 네 번의 합헌 결정이 내려져 '이번에도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논란 끝에 간통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문은 37페이지 분량입니다. 건국때부터 숱한 논란을 이어 온 것에 비하면 비교적 가볍습니다.

여론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보호, 과도한 징역형 등을 지적한 다수 위헌 의견에 쏠렸습니다.

저는 소수의견을 낸 안창호 재판관과 이정미 재판관의 논리가 궁금했습니다. 세계 주요국이 이미 폐지쪽으로 기운 바 있는 간통죄를 유지하자는 논리가 무엇일까.

안 재판관과 이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9페이지 분량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간통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에 맡겨야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도 다른 이성과 간통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넘는다는 것이죠.

2년이하의 징역형만 돼 있어 제재가 과도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법원이 해당 혐의자에 형의 선고를 미루고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유예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선고유예'를 적절히 활용하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눈에 띄는 지점이 꽤 있었습니다.

두 소수의견 재판관은 배우자가 간통 등 부정행위를 저질러 이혼하는 비율이 47%라는 연구결과를 먼저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간통으로 가정이 깨져 이혼에 이르면 청소년에게 피해가 간다고 우려했습니다. 이혼가정의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간통죄를 폐지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청소년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요약하면 '한쪽 배우자의 간통 → 이혼 → 청소년 피해방치'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런 논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다수의견에 의해 공격받았습니다. 다수의견은 한쪽 배우자의 간통을 간통죄 조항으로 인해 막을 수도 없고, 이혼은 더욱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효성이 없는 껍데기만 남은 제도란 것이죠. 특히 간통죄로 고소를 하려면 형사소송법상 이혼을 했거나 이혼소송 중이어야 합니다.

법 논리로만 본다면 다수의견이 더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소수의견 재판관의 걱정과 고민이 결정문 곳곳에서 읽혀졌습니다.

"간통죄를 폐지할 경우 혼인관계에서 오는 책임과 가정의 소중함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만을 앞세울 것이다."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파괴되고 가정내 약자와 어린 자녀들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될 것이다."

작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간통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4%가 간통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5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만2500명 중 60%가 간통죄 유지 의견을 보였습니다.

법률가가 아닌 대중들은 아마도 소수의견이 걱정한 가정내 다른 구성원, 특히 이혼후 상처받는 청소년을 의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62년만의 간통죄 위헌.

찬성에 섰던 사람들은 이불 속 일을 더 이상 국가가 개입하지 못하게 된 점을 환영할 겁니다.

하지만 법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지금부터가 간통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JTBC 백종훈기자 iam10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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