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어제(23일) 기업 10곳을 추가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로써 모두 19개 기업, 256명의 임직원이 수사선상에 올랐는데요. 하지만 수사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여전히 속출하고 있고 본인도 모르게 피해가 진행되고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실태, 윤샘이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박영철/피해자 박나원양 아버지 : 감기인 줄 알고 입원했는데 기흉도 생긴다고 해서 옆구리 뚫어서 기포 빼내는 시술도 했어요.]
[윤미애/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 병원에 온 게 불과 작년 10월이거든요. 너무 안 좋은 상태에서 온 거죠.]
지난해 TV광고로 방영된 정부 캠페인입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경우 신고하라는 자막이 지나갑니다.
이 광고를 마지막으로 환경부 산하기구에 설치됐던 피해 신고 접수 창구는 지난해 12월 31일 문을 닫았습니다.
[환경부 관계자 : 그분들 지금 신청한다고 해서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2018년도까지 지금 (이미 신청한 피해자) 조사를 해야 되거든요.]
하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피해자들은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임흥규 팀장/환경보건시민센터 : 정부가 피해신고를 받지 않으니까 환경단체가 받고 있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2월까지 추산한 양이 200명이 넘었거든요.]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질병으로 드러나기까지 기간이 사람마다 다른 만큼 앞으로도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임종한 교수/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 증상이 나중에 나타나고 질병이 이후에 진행돼서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은 지금의 조사 범위, 보상 범위 바깥에 있기 때문에 조사가 더 필요합니다.]
폐 이식을 앞두고 있는 윤미애씨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지 10년 만인 지난해 말에서야 폐 섬유화 진단을 받았습니다.
[윤미애/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 살이 좀 빠지기도 하고, 기침도 많이 나서 병원을 찾았거든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가습기에 대한 그런 케이스가 있었는지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2006년 아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장기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가 10년 뒤 무서운 질병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폐 손상만 피해로 인정하는 정부의 판정 기준도 형평성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새롭게 드러나는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앓고 있는 호흡기 질환은 아예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이모 씨/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 3, 4등급 피해자 중에 제일 많이 앓고 있는 게 비염이에요. 그다음이 천식, 기관지염 이런 식으로 호흡기 계통이 다 안 좋은 거예요.]
정부는 2011년 실시한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폐 손상만 피해로 인정하고 있지만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백도명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 : 점막에 염증을 일으키는 성분이 꽤 있어서 비강, 코, 후두 같은 곳에 분명히 자극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새롭게 드러나는 피해를 외면하고 있는 사이 기존 피해자들은 제조 판매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인정된 사망자 95명 가운데 25%가 넘는 24명은 제조 판매사 측에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공소시효인 7년이 이미 지났습니다.
제조 판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달 초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피해자들에게 보낸 안내문에는 '피해단계를 통보받은 날부터 3년간 소송을 하지 않으면 효력이 소멸된다'고 적혀있습니다.
2014년 1차 조사에서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은 올해가 지나면 민사소송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현재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 권모 씨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만 합니다.
권씨는 임신 기간 중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2명의 아이를 잃었습니다.
[권모 씨/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 나중에 어느 순간 눈 감는 날이 와도 이 정도는 부모로서 내 자식한테 한 발짝 나갔다. 나 자신에 대한 한 발짝 나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