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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제 본영' 도쿄 한복판에서…독립을 외치다

입력 2019-01-08 09:12 수정 2019-01-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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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1919년 3·1운동이 있기 전 도화선이 됐었던 2·8독립선언이 있었습니다. 조선인 유학생 수백명이 일본 도쿄에서 외친 독립이었습니다. 당시 외침이 있었던 그 장소의 정확한 위치가 이번에 확인이 됐습니다.

먼저 윤설영 기자입니다.

[기자]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 한복판에서는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재일본도쿄 조선YMCA에 모인 조선인 유학생 600명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유학생 수십명이 체포됐지만 만세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관동대지진으로 YMCA 회관은 불 타 없어졌습니다.

역사적인 2·8 독립선언의 흔적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당시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최승만은 YMCA의 정확한 위치를 동아일보에 회고했습니다.

[다즈케 가즈히사/2·8 독립선언기념자료실장 : 건물 앞에 센슈대학이 있었다, 옆에는 시내가 흐르고 다리가 있었다는 것이죠. 옛 지도 비교해보면 다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1921년 편찬된 지도에도 다리와 대학교 위치가 확인 됩니다.

제 옆으로 보이는 곳이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YMCA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이쪽방향으로 출입문이 나 있었고 240m² 규모의 2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사루 상회라는 세탁업소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2·8 독립선언터였다는 표식 하나없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엉뚱한 곳을 독립선언터로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야 해외사적지를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것입니다.

조선유학생들은 갖은 탄압에도 히비야 공원에서 2차, 3차, 4차 독립 만세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적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들의 만세 운동은 3월 중순까지 계속됐고 3·1운동과 이후 펼쳐진 상하이 임시정부 출범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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