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앵커브리핑] '널문리…문이 다리가 되는 곳'

입력 2018-04-19 21:31 수정 2018-04-20 01:33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왜구가 조선 땅을 침범했던 1592년 4월.

선조 임금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파주를 거쳐서 의주로 향하던 길.

임금은 출렁이는 임진강 앞에서 멈춰서야만 했습니다.

어가를 가로막은 건널 수 없는 강…

그러나 그곳에서는 문이 다리가 되었습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임금이었지만 난처한 어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백성들은 자기 집 대문을 뜯어내서 널빤지를 이어서 다리를 놓았지요.

백성이 문을 부수어 다리를 만들었던 그 날 이후에 그곳은 '널문리'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너른 길가에 초가집 몇 채가 드문드문 놓인 한적한 시골 마을.

이곳 널문리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951년 10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던 휴전회담.

남과 북 양측은 38도선에서 가장 가까운 널문리 주막 앞에 천막을 쳤습니다.

중공군 대표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순우리말인 널문리를 고집하는 대신 한자인 판문점이라고 표기하면서 대화는 시작되었고…

이후에 이곳의 지명은 널문리가 아닌 판문점이 되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인 동시에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판문점리라는 두 개의 주소를 가진 곳.

남과 북의 정상은 11년 만에 이곳에서 한 자리에 마주 앉게 됩니다.

어쩌면 '휴전'이라는 단어 대신 '종전'…

즉 전쟁을 끝낸다는 단어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지금…

소설가 이호철의 말을 빌자면 '가슴패기에 난 부스럼 같은' 분단을 이고 살았던 사람들은 스미듯 일상이 된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백 년쯤 뒤 판문점이란 단어는 고어가 될 것이다. 그때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쓰일 것이다. 1953년에 생겼다가 19XX년에 없어졌다. 지금의 개성시의 남단 문화회관이 바로 그 자리다"
- 이호철 < 판문점 >

지난 1961년에 < 판문점 > 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 이호철은 말했습니다.

그의 희망대로라면 판문점은 세기가 바뀌기 전에 사라진 옛말이 되어야 마땅했지요.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은 사람들은 평범한 백성이 문을 놓아서 다리를 만들었던 그 낡고 오래된 문 앞에서 긴 숨을 고르고 있는 중입니다.

널문리.
1592년의 4월…문이 다리가 되어서 왜구에 쫓겼던 선조 임금이 건넜던 다리.

판문점.
2018년의 4월…남과 북은 어떤 모습으로 건널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관련기사

4·27 선언 준비…비핵화·종전선언 '한반도 평화 패키지' 박차 청와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역사적 제안' 검토 2000, 2007…미리보는 2018 남북정상회담 '상징적 장면' 남북 정상 첫 악수부터…어떤 순간들 '생중계' 되나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