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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두환 떠난 그날, "미안하다"며 세상 등진 피해자

입력 2022-05-18 19:38 수정 2022-05-18 21:36

42년 지났어도 트라우마 여전…50여명 극단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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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지났어도 트라우마 여전…50여명 극단 선택

[앵커]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뉴스룸을 시작합니다. 지난해 전두환 씨가 사망한 날, 5·18 피해자 4명이 동시에 세상을 등진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JTBC의 취재 결과, 우연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중 한 명인 고 이광영 씨는 오랜 통증 끝에 세상을 떠난다는 짧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5·18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습니다. 피해자의 부모와 형제, 자식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18일) 뉴스룸은 42년 전 그날이 남긴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의 실태를 집중 조명합니다.

먼저, 라정주 피디입니다.

[기자]

나는 5·18 부상자 이광영입니다.
사람들이 총을 맞아 쓰러졌고, 우리는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던 중 날아온 계엄군의 총탄.
그렇게 두 다리를 잃었지만, 그날의 진실만 밝힐 수 있다면…

[고 이광영 씨 (2019년 광주지방법원) : (전두환 씨의 주장은) 우리 역사와 우리 국민들을 무시하는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본 상황만큼은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입니다.]

40년 노력에도 진실은 침묵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5·18과 스스로 이별합니다.

전두환 씨는 지난해 11월 23일 숨졌습니다.

같은 날 전남 강진 저수지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이광영 씨였습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이게 척추 M16 총탄 자리인데 이것 때문에 우리 형님의 인생을 그냥 하루아침에 망쳐버렸어.]

오랜 통증 끝에 떠난다는 짧은 유서.

형에게 42년 전 5·18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최루탄 소리에 도망가고 잡혀가지고 또 고문당하고 누가 쫓아오고 낭떠러지에 떨어지려 하고 그러니까 잠자다가 일어나서 그냥 이상한 소리하고 그런 환청 속에서 평생을 보내신 거 같아요.]

동생은 누구보다 진상규명에 앞장 섰던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우리 형님이 여기로는 오시기 싫어하셨는데 내가 여기로 모셔놔서 항상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죄송하고…]

이광영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 3명도 이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지현/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 전두환이 죽었던 작년 11월 23일날 그때 저희 회원들 네 분이 그날 또 돌아가셨잖아요.]

이지현 씨의 여동생도 1983년 9월 세상을 등졌습니다.

가족들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겁니다.

5·18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40년 넘게 자살로 이어져 왔지만, 정부도 관련 기관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않고 있습니다.

(VJ : 김민재 / 영상그래픽 : 김지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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