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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반란군엔 무공훈장, 맞서다 숨진 초병에겐 훈장 추서도 안돼

입력 2016-01-29 16:47

방송: 1월 29일(금) 밤 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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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1월 29일(금) 밤 9시 40분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반란군엔 무공훈장, 맞서다 숨진 초병에겐 훈장 추서도 안돼


JTBC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이하 '스포트라이트') 34회 '대한민국 훈장의 민낯' 편에서는 '훈장 수여 명단'의 데이터 분석 결과가 전격 공개된다.

29일(금)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쿠데타군에 맞서 교전을 벌이다 사망한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1979년 12월12일 자정 무렵,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는 중무장한 군인 십 수명이 사령관실로 들이닥쳤다. 특전사 3여단(여단장 최세창) 15대대 소속(대대장 박종규 중령)공수부대 병력이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왼팔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건물 밖으로 끌려나왔다. 정 사령관이 지프에 실려 서빙고 보안사 분실로 연행된 직후 시신 한 구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정 사령관의 비서실장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ㆍ35세ㆍ육사 25기)이었다. 쿠데타군에 맞서 교전을 벌이던 김 중령이 6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것이었다.

당시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여 있던 신군부 측은 정 사령관이 자신들의 거사를 진압하기 위해 9공수여단에 출동명령을 내리자 무력 체포에 나섰다 총격전을 벌였다. 사령부 건물에는 주요 참모들과 본부대 병력이 있었으나 신군부 측이 육사 선후배 등의 연고를 이용해 사전 조치를 취해 사령부를 습격하는 공수부대원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오직 사령관 비서실장인 김오랑 중령만이 체포조에 맞서 권총으로 응사하다 숨진 것이다. 김 중령의 시신은 거적때기에 싸여 부대 뒷산에 묻혔다가 이듬해 육사 동기생들의 노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0년에야 그는 중령으로 추서됐다.

하지만 쿠데타군에 맞선 그의 공적은 35년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뒤늦게 김 소령에 대해 무공훈장 추서와 추모결의안이 17대, 18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정부의 비협조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김 중령이 '전투참가' 등 상훈법의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각에서는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한 규정에 비추어 김 소령의 무공훈장 서훈 자격에 문제가 없다며 반발했다. 이후 19대 국회 국방위원회가 절충안을 내 결국 김 소령에게 무공훈장이 아닌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반면 12ㆍ12 군사반란과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 무력진압의 직후 이에 참여한 장교 수 십 명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12ㆍ12가 군사반란으로 규정된 뒤 정부가 뒤늦게 서훈을 박탈했지만 대상자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반란군 수뇌부 16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무공훈장을 반납한 사람은 전 전 대통령과 장세동씨 2명 뿐이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숨진 군인은 또 있다. 당시 국방부 헌병대 소속으로 근무하던 정선엽 병장. 조선대 2학년을 다니다 입대한 정 병장은 당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 초소에서 근무하다 국방부를 습격한 신군부 측 병력과 총격전 중 숨졌다. 제대를 불과 3개월 앞둔 상황이었다. 예비역 육군 준장 표명렬 장군은 "김오랑 중령은 육사동기들의 노력과 정치권의 관심으로 뒤늦게나마 훈장이 추서됐지만 초병으로 끝까지 임무를 다하다 숨진 정 병장에게는 어떤 훈장도 추서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표 장군은 또 "훈장도 계급에 따라가는 것 같다"며 "무공훈장 중 최고등급인 태극무공 훈장의 경우 실제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운 병사들이 받은 사례는 3~4건밖에 없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이 68만여 건의 훈포장 내역 자료를 조사ㆍ분석한 결과 1948년 정부수립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은 총 385개였다. 이중 외국인이 받은 것을 빼면 6.25전쟁 때 76개, 베트남전쟁 때 12개, 기타(1ㆍ21 무장공비사건 관련 등) 12개로 100개의 태극무공훈장이 한국인에게 수여됐다. 6.25전쟁 때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을 다시 계급별로 보면 장군이 56개, 영관급 4개, 위관급 5개, 하사관급 3개, 병사 3개, 경찰 등 기타 5개로 나타났다.

국내 서훈제도를 연구해 온 김정훈 박사(한국생활자치연구원ㆍ행정학)는 "무공훈장뿐 아니라 근정훈장 등 각종 훈장이 공적 내용보다는 재직 당시의 직위나 계급에 따라 훈격이 정해지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훈장의 민낯을 낱낱이 밝힌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1월 29일(금) 밤 9시 40분에 방송된다.

(JTBC 방송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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