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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괘씸죄' 호주에 무차별 경제보복…中, 제 발등 찍었다

입력 2021-10-01 07:02 수정 2021-10-01 11:22

호주, 코로나 기원설·화웨이 배제 등 中 정조준
격분한 中,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가격 폭등
광둥성 등 정전·단전…중점지역 20곳 전력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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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코로나 기원설·화웨이 배제 등 中 정조준
격분한 中,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가격 폭등
광둥성 등 정전·단전…중점지역 20곳 전력 제한

중국 북동부 만주 지역과 저장·광둥·장쑤성 등 산업기지가 밀집한 지역에 정전·단전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다음주 국경절 연휴가 시작되지만 전력 공급 제약으로 내수 진작 효과 등 기대가 컸던 연휴 경제는 물 건너가고 있는 국면입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사진=로이터 연합뉴스]

개혁개방 40년만에 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이번 전력대란 사태를 두고 여러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탄소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 목표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산업용 전력공급을 제한하고 있는 규제 실정과 관련 있습니다.

둘째, 발전용 석탄 가격 인상으로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채산성이 회복될 때까지 전력 생산을 멈추는 회사들로 인해 수급 불균형이 생긴 겁니다. 공급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전력 대란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산시(陝西)성에 위치한 석탄 화력 발전소. [사진=AP 연합뉴스]중국 산시(陝西)성에 위치한 석탄 화력 발전소. [사진=AP 연합뉴스]

시진핑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푸른 하늘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에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전력 생산량 감소로 제한 송전이 이뤄지면서 알루미늄 제련, 섬유 생산, 대두 가공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장의 조업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장쑤성에서는 9월 들어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철강, 화학공업, 시멘트 등 업종에 대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장쑤성 장자강(張家港)시에 있는 포스코 스테인리스강 생산 라인 일부도 9월 17일부터 가동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에너지·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라는 정부의 명령 때문에 공장들이 자의반 타의반 조업을 중단하고 있지만 탄소 배출량 문제는 완급 조절이 가능한 사안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천명한 이상, 전력난 같은 급한 불부터 끄면서 시점을 조절해도 된다는 시각이 적잖습니다.

특히 장쑤·저장·광둥성 등 전력난이 심각한 지역은 중국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생산 거점입니다. 순차적으로 전력 공급을 조절해야 하는 국가 산업 동맥인 겁니다.

따라서 이번 대란의 근본적인 이유는 전력 수급 불균형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공급할 전력이 있으면서 그랬겠느냐'는 거죠. 대도시를 휩쓴 정전 사태로 도로의 가로등·신호등이 꺼지고 양초 주문량이 10배 폭증한 지경에 탄소 배출을 이유로 화력발전을 제한할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석유·발전·석탄 등 국유 에너지기업을 대상으로 겨울철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9월 30일 보도했습니다. 전력 확보가 발 등의 불인 겁니다.

9월 27일 중국 동부 장쑤성의 난징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9월 27일 중국 동부 장쑤성의 난징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석탄 화력 발전은 2020년 기준 중국 전력 생산의 68%(※중국 전력기업연합회 자료)를 차지합니다.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발전용 석탄(thermal coal) 가격이 연초 대비 50% 폭등한 게 전력 대란의 직격탄이 됐습니다. 일부 화력 발전소는 가격 부담을 이유로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이게 직접적인 전력난의 원인입니다. 탄소 배출량 규제도 있으니 가동 중단의 명분은 충분했던 겁니다.

지난해 말부터 호주산 석탄의 수입이 끊어졌습니다. 발전용 석탄은 주로 수입 석탄에 의존했는데 절반을 차지하던 호주산 수입이 당국 규제로 막히자 석탄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 겁니다.

중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31개 성··자치구 가운데 적어도 20개 중점 지역에서 전력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공장마다 정전에 단전에, 전력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24시간 대기조를 운영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9월 24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의 난닝에서 최신 아이폰13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애플 스토어에 줄을 서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9월 24일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의 난닝에서 최신 아이폰13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애플 스토어에 줄을 서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호주를 '괘씸죄'로 다루려던 중국이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됐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호주가 중국의 코로나 19 기원설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구하자 격분해 무역 보복에 나섰습니다. 앞서 2018년 트럼프의 화웨이 견제에 동참해 5G 통신사업에 화웨이 배제를 결정한 것도 중국을 자극하던 차에 민감한 코로나 기원설을 파헤치겠다며 중국을 정조준하자 경제를 무기로 대대적 반격에 나선 겁니다.

중국은 호주산 보리·와인·랍스터 등 13개 분야의 품목에 대해 수입 제한과 금지 등 경제 보복을 가했습니다. 문제는 석탄이 여기에 포함되면서 사달이 났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사진=AP 연합뉴스]

2019년 기준 중국은 발전용 석탄의 57%를 호주로부터 들여왔습니다. 호주 입장에선 중국이 정말 큰 바이어였던 겁니다. 이 석탄 수입을 막아버리면 호주가 굴복할 것으로 봤던 중국은 지금 전력 대란을 맞고 있는 처지가 됐습니다. 수입 제한 결정이 부메랑이 된 겁니다. 말을 안들으면 경제로 채찍질을 하며 들어오라는 '중국의 길'. 여기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버텼던 '호주의 길'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중국은 자국의 네이멍구 노천탄광에서 채굴을 늘린다해도 물류 비용이 커 채산성이 떨어지고 탄질도 안좋습니다. 게다가 광산 개발 부패 스캔들로 수사를 받으면서 그 여파로 채굴도 여의치 않은 형편입니다.

석탄 산지인 산시성의 석탄은 얕은 층에 있어 채굴하기 쉽고 품질도 좋았지만 현재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야 해서 채산성이 떨어집니다. 화력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남아공이나 콜롬비아로 교역선을 바꾸려해도 녹록한 게 아닙니다.

호주산에 비해 품질도 떨어지지만 남아공이나 콜롬비아가 중국의 이런 처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협상 우위를 놀릴 이유도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산이 수입산의 주력을 이뤘지만 열효율이 떨어져 가성비가 호주산과 비교할 게 아닙니다. 이래저래 호주산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반면 호주는 대체 교역선을 통해 중국의 석탄 수입 제한 충격을 최소화시켰습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수입 금지의 후폭풍이 중국 전력 시장을 덮쳤습니다. 이번 사태는 거침 없이 힘자랑을 일삼던 중국에 경종이 될만 합니다.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히 들어온 중국 경제의 현실은 아랑곳 않고 경제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겁니다.

중국만 낭패를 본 걸까요. 아닙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자 생산기지가 됐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함께 보겠습니다. 2019년 WTO가 발표한 공급망 변화입니다.

ICT 제품의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전통적인 교역  · 단순 GVC 교역 · 복잡 GVC 교역 네트워크. 17년 동안 중국이 핵심 생산거점으로 변했다. [그래픽=WTO]ICT 제품의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전통적인 교역 · 단순 GVC 교역 · 복잡 GVC 교역 네트워크. 17년 동안 중국이 핵심 생산거점으로 변했다. [그래픽=WTO]

이런 구조에서 중국 당국이 전력난 때문에 전기를 제한적으로 공급하다보니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가동을 하다말다 반복하면서 반도체 공급이 차질을 빚어지고 있습니다.

제한 송전으로  가로등이 모두 꺼진 선양시의 간선 도로. [사진=웨이보 캡처]제한 송전으로 가로등이 모두 꺼진 선양시의 간선 도로. [사진=웨이보 캡처]
그 여파는 중국의 애플과 테슬라 공장 뿐 아니라 반도체 수요가 큰 대만의 각급 공장들에도 미치고 있습니다.

루팅 노무라홀딩스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가 블룸버그통신에 털어놓은 진단입니다.

“섬유에서 장난감, 기계 부품까지 글로벌 시장은 공급 부족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중국 관련 가장 뜨거운 이슈는 '헝다'(恒大·에버그란데)에서 '전력난'으로 바뀔 것으로 본다.”

중국의 주요 공장들이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섬유부터 기계부품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글로벌 공급부족을 일으킬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의 전력대란이 중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히 연결된 중국의 위치를 이번 전력 대란 사태가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사진=AP 연합뉴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기화로 본격적인 기술 전략경쟁이 본격화되자 중국은 홍색공급망을 부르짖고 나왔습니다. '자력갱생' 의 정신으로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하자는 겁니다.

어지간한 상품 생산은 중국에서 다 해결하자는 거지요. 전기자동차·휴대폰·TV·냉장고 등 생산은 홍색공급망을 통하자는 겁니다.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결정하는 AI와 빅데이터·5G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중국은 홍색공급망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석탄 수급 하나 꼬이자 전력 대란을 일으키고 전세계 공급망에 위기감을 전가하는 형편입니다. 그만큼 홍색공급망이 글로벌 서플라이체인과 분리하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시진핑이 주장하는 자력갱생의 현주소가 호주에 대한 석탄 몽니에서 드러났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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