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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우측보행 조작·왜곡 안하셨다고요?

입력 2015-09-08 17:45 수정 2015-09-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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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하철을 타신 분들은 한번 쯤은 우측보행 표지판을 봤을 겁니다.

정부는 2010년 좌측이던 보행 기준을 갑자기 우측으로 바꿨습니다.

당시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가 근거였습니다.

"우측보행이 좌측보행보다 뇌파가 안정적이다."
"우측보행은 일제 치하에서 이어져 온 잔재다."
"우측보행을 실험해보니 좌측보다 더 원활하더라."

그런데 취재진이 이 근거가 된 보고서를 입수해서 살펴봤더니 실험 데이터와 조건, 결과가 왜곡, 조작됐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뇌파 실험을 진행했던 연구원도 취재진을 만나 정부의 짜맞추기식 보고서에 자신의 실험이 사용된 걸 인정했습니다.

▶ JTBC 뉴스룸 '우측보행' 기사 보기 ([탐사플러스] 전국민 우롱한 '우측보행' 조작 보고서…탁상행정 헛돈)

보도가 나간 후인 지난주 한국교통연구원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실험보고서 수치를 조작하거나 우측보행에 유리하게 인위적으로 실험조건을 조작하지 않았다"

방송의 시간제약상 기사에 취재 내용을 다 싣지 못했는데 이 기회를 빌어 무엇이 조작·왜곡됐는지 충분히 다뤄보겠습니다.

교통연구원이 조작을 안했다고 하니 그 부분부터 언급하죠. 교통연구원은 용역을 준 한양대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한양대 보고서는 통행방향이 교차될 때와 유지될 때 뇌파와 심박수에 차이가 있는지 실험했습니다.

쉽게 말해 오른쪽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걸을때, 오른쪽으로 걷다가 그대로 오른쪽으로 걸을 때의 차이를 본거죠. '통행방향 변화' 때보다 '통행방향 유지' 때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알파파가 더 높은 걸로 나왔습니다.

[취재수첩] 우측보행 조작·왜곡 안하셨다고요?


그런데 교통연구원 보고서의 그래프에선 이 항목이 '우측보행' '좌측보행'으로 바뀌어있습니다. 우측보행을 할때 좌측보행을 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표시한 겁니다. 실제 이 실험을 진행한 한양대 연구원은 취재진을 만나 왜 저렇게 바뀌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실험대상자도 오른손잡이 70%, 왼손잡이 30% 비율로 실험했다고 했지만 실제 한양대는 50%, 50% 비율로 실험했습니다.

[취재수첩] 우측보행 조작·왜곡 안하셨다고요?


심박수 실험 데이터 조작은 더 심합니다. '통행방향 변화' 때 '통행방향 유지' 때보다 심박수가 더 증가한다는 실험이었는데 교통연구원은 그래프에서 이를 '우측보행' '좌측보행'으로 바꿨습니다. 심지어 한양대 보고서에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했는데 교통연구원 보고서는 '유의한 차이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심박수 실험 데이터를 엉뚱하게 정신부하량 실험 쪽으로 끌어오는가 하면 원 보고서에 있지도 않은 '신뢰수준 95% 유의한 차이'라는 분석도 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교통연구원에 문의했지만 한달이 넘어도 답변해주지 않았는데 보도가 나가고선 곧바로 타매체를 통해 조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양대 연구원은 실제 우측보행이 더 뛰어난지 궁금해서 졸업논문을 통해 우측보행과 좌측보행의 뇌파 차이를 다뤘습니다.

결론은 '차이 없음' 이었습니다.

왜곡된 실험은 또 있습니다. 교통연구원은 우측보행과 좌측보행의 소통 정도를 실험하면서 오른쪽에만 문을 뚫어놨습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보행하는게 당연히 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실험 조건이 잘못됐다는 JTBC의 지적에 교통연구원은 "당시 공항게이트, 지하철 탑승구, 에스컬레이터, 회전문 등이 대부분 우측으로 설치돼 있어 이를 전제로 좌측·우측보행 상황을 비교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실험 용역을 받아 직접 진행했던 업체 관계자의 말은 달랐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우측보행이 기존 좌측보행보다 해보니까 더 낫더라 라는 사회적 동의를 끌어내는데 조사 목적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우측보행이 좋다는 결론이 나 있었던 겁니다.

일제 잔재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교통연구원은 좌측통행이 일제의 잔재라는 근거가 확실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1905년 대한제국 규정에서 우측통행을 규정했으나 조선총독부는 1921년 도로취체규칙을 개정하면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교통연구원 자문회의록에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측보행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황덕수 우측통행 국민운동본부장의 말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좌측통행에 대한 관습을 일제의 잔재라고 보기는 어려움.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우측보행을 변경하려고 해서는 반발이 우려됨"이라고 했습니다. 제 주장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우측보행 최초제안자가 자문회의에서 '일제 잔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당시 교통연구원은 우측보행 변경에 대한 시민의식을 조사했는데 결론은 '찬성 및 안전하다면 변경에 대해 관계없음 57%로 다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조사 데이터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실제론 '우측보행 변경에 찬성 28%, 반대 15%, 관계없음 57%' 였습니다. 이 중 '관계없음' 57%는 변경하든 말든 관계없음 이란 의미인데, 이를 긍정적인 의사표시로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겁니다.

당시 교통연구원 자문회의에서 국토부 관계자가 '우측보행의 변경에 대해서 상관없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경우 우측보행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됨'이라고 지적했는데 말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번 기사를 통해 우측보행이 좋냐 나쁘냐를 지적하고자 했던게 아닙니다. 우측보행이 진짜 좋은 것이라면 정확한 실험과 데이터로 국민들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교통연구원이 2008년 펴낸 월간교통 6월호에는 '우측이든 좌측이든 어느 방향의 통행이 우월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지금까지 제시된 바가 없다'고 돼 있습니다. 또 '통행방향에 따른 어떠한 추가적인 편익이나 과학적인 효과도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교통연구원이 스스로 상반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뭘까요.

지난 2009년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e="">에 우측보행 관련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물리학자인 백승기, 김범준 교수가 수천~수만개의 입자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모든 사람이 우측통행 규칙을 따르면 오히려 길이 막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면 좌우측 보행을 마음대로 하는 규칙 위반자가 있을때 체증이 해소됐습니다. 국민의 보행 방향을 바꾸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면서 이런 연구결과는 왜 참고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우측보행을 취재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났는데요. 그들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성윤/문화사회연구원 : 보행이라는 것 자체가 도시문화, 공간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시민들의 실천방식이거든요. 특정한 기준에 따라 획일화 되겠다, 표준적인 방식으로 보행문화를 개선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문화다양성 원칙에 비하자면 굉장히 모순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우리 국민은 실험대상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떤 정책을 다른 걸로 바꿀 때는 정말 심사숙고하고 많은 어떤 시뮬레이션이라든지 여러 연구를 통해서 '이렇게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이 길밖에 없다' 라고 할 때 바꾸는 거예요.]

JTBC 김진일 기자 kim.jinil@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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