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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차 타고 '500원 순례길'…가난한 노인들의 하루

입력 2016-01-2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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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는 밀착카메라 순서인데요. 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우리나라죠. 그 현주소를 들여다봤습니다. 500원 동전, 또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 매일 새벽 줄을 서는 분들의 모습, 담았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오전 7시 반, 서울 이촌동의 한 성당입니다.

노인들이 성당 앞에 긴 줄을 만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받고 황급히 떠나는 이들. 각자 손에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쥐어져 있습니다.

백여 명에 가까운 노인들이 성당에서 한꺼번에 나오다 보니 이렇게 행렬이 만들어질 정도입니다.

어디를 향해 가나 했더니 300여 미터 떨어진 이촌역이었습니다. 저도 함께 뒤쫓아가 보겠습니다.

네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서울 반포동의 한 공원입니다.

[서울 끝에 사는데. 여기 오려면 새벽 첫차 타고 와.]

지금 시각은 8시 반입니다. 9시 반부터 돈을 나눠주기 때문에 아직 한 시간여 가량 남았는데요.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긴 줄이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날씨가 워낙 춥다 보니 바닥에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리 잡기 경쟁이 치열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노인 두 명이 서로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경찰 오면 안 되잖아. (신고해야겠어.)]

분이 풀리지 않은 노인은 큰 소리를 칩니다.

[네가 욕을 하고 XX 하니까. 이 자식아, 왜 욕을 하고 그래.]

[다른 데 가려고 빨리 받아 가려고 하는 거야. 뭐하는 짓이냐고 매일 싸움이나 하고.]

매주 목요일마다 종교 시설 3곳에서 500원씩 모두 1500원과 먹을거리를 나눠줍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동전을 나눠주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 흘렀고 대상자도 실직자에서 노년층으로 이동했습니다.

[남서울교회 관계자 : 백원짜리 동전 하나면 커피 한 잔씩 다 했으니까. 자판기 커피값을 주기 시작한 게 (발단이 돼서).]

또다시 노인들은 500원을 주는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집니다.

[정모 씨/68세 : 신촌, 이대, 아현동, 서대문, 연신내. 액수는 천차만별로 다르죠. 능력껏. 하루 7000~8000원 (벌어요.)]

노인들에게 이른바 '짤짤이 순례길'로 불립니다.

길을 나선 사연은 절실합니다.

[정모 씨/68세 :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돼요. 그걸로 방세 내는 거예요.]

[백모 씨/85세 : (망설여지지 않으셨어요? 여기 나오시는 게.) 안 망설여졌어. 다급하니까. 한 푼이라도 모아서 병원비하고 약값하고. 밥 못 먹으니까 하다못해 두부 한 모라도 사서.]

88살인 한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21살 손자와 거리에 나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손자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모 씨/88세 : 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가서 5년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얘 어머니는 지금 부천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납골당에 있는데.]

할머니와 손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교시설 4곳을 돌며 6000원을 벌었습니다.

전기와 수도 사용료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조모 씨/88세 : 집에 2만 5000원 있길래 그거 채워주려고 나온 거야. 3만 원 줘야죠.]

한 달 수입은 노령연금과 손자 앞으로 나오는 장애 수당 등 42만 원이 전부입니다.

[조모 씨/88세 : (매일 한 끼 드시는 거예요?) 점심 한 때. (밖에서?) 네, 청량리나. (저녁은) 교회에서 준 빵이나 먹고말고 그래요.]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인구는 665만여 명.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이 1위입니다.

[윤애숙 국장/빈곤사회연대 : 가난한 사람에 대한 생계 책임을 개인한테 미룰 게 아니라 우리가 같이 책임질 수 있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

500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자판기에서 캔 음료수 하나 뽑아마실 수 없는 돈입니다.

추운 날씨에 거리로 내몰린 노년의 순례길은 우리 사회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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