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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뭉개기·허술한 관리가 키운 미국 체육 최악의 성추문

입력 2019-01-11 15:46

즉각 수사와 투명한 정보 공유·가해자 추방 등 체계적인 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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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 수사와 투명한 정보 공유·가해자 추방 등 체계적인 대책 절실

은폐·뭉개기·허술한 관리가 키운 미국 체육 최악의 성추문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선수 폭행과 성폭행 의혹 사건은 스포츠 선수들의 인권에 둔감한 한국 체육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국 체육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타·성폭력과 같은 구조적인 악습을 반드시 뿌리 뽑고 이와 같은 일을 사전에 차단할 대책을 확립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았다.

코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가 또 등장하면서 이번 파문은 스포츠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한국판 나사르' 사건으로 불릴 만하다.

미국 미시간대 체조팀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나사르는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30년 가까운 기간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나사르는 체조선수 100여명의 연쇄 증언이 나온 2018년 1월 이후 법원에서 최대 300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살아서 교도소 바깥으로 나올 순 없게 됐다.

나사르 추문은 2016년 9월 미국 일간지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의 보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사르를 법으로 단죄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 PBS 방송은 미국을 강타한 나사르 사건을 지난해 말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미국체조협회(이하 협회), 수사 기관 등이 6가지 이유로 나사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선수와 대표팀 관리·감독에 책임 있는 관계자들의 실패를 규명함으로써 우리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보도를 보면, 사태를 키운 가장 큰 책임은 협회에 있다.

협회는 2015년 6월께 나사르의 추문을 접하고 5주간 내사를 거쳐 그해 7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했다.

적법한 절차를 밟은 것처럼 보이나 협회는 체조계 구성원들에게 나사르 추문을 철저히 숨겼다. 조사 이후 나사르의 대회 불참 사유를 거짓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협회가 사건 은폐에만 몰두한 사이 나사르는 대표팀을 떠나서도 미시간대와 다른 체조 클럽에서 14개월이나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

무관용 원칙에 따라 성폭행 가해 의심자를 즉각 퇴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린 협회의 처사를 PBS는 첫 번째 관리 실수로 지목했다.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협회가 나사르와 입을 맞추는 데만 집중하고 나사르의 행동을 막지 못한 것도 절대 작지 않은 과오였다.

성추행 조사로 대표팀 대회에 동행하지 못하자 나사르와 협회는 아파서 대회에 못 가는 것으로 짜 맞췄다. 협회는 나사르에게 조사 2개월 후인 2015년 9월 조용히 은퇴할 것을 종용했다.

나사르와 대표팀 최정상급 선수들은 미국 텍사스주 헌츠빌의 대표팀 센터에서 훈련했다.

외진 데다가 선수들의 인권을 관리·감독할 시설마저 부족한 이 훈련 센터는 나사르가 범죄를 저지르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협회의 무신경이 낳은 인재였다.

USOC는 협회의 나사르 조사와 수사를 접하고도 뭉갰다.

USOC 산하 다른 종목 선수·지도자들에게 관련 사실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 USOC 차원의 내사도 벌이지 않는 등 중요하게 여겨질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추후 조사에서 드러났다.

미국 올림픽 스포츠 최상급 기관의 묵인과 방조가 여자 체조선수들의 피해로 직결됐다.

PBS 방송은 또 FBI의 석연치 않은 수사 지연을 거론하고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이 보낸 숱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도움 요청을 회피한 USOC·협회·FBI 삼자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추문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조 전 코치 성폭행 의혹 사건이 터진 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10일 가해자 영구제명과 해외 취업 차단, 민간주도의 선수 전수조사를 뼈대로 한 성폭력 후속 대책을 급히 발표했다.

그러나 나사르 사태에서 보듯 중요한 건 대책 실행 의지와 방법이다.

구타와 성폭행 사건 제보를 받은 종목 단체나 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수사 기관에 사건을 즉시 이첩해야 한다.

수사 기관은 즉각적인 수사에 나서고, 협회와 체육회는 사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고려하되 필요한 정보를 관계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가해 의심자가 수사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당 종목에 계속 종사할 수 없도록 일시 또는 영구추방 조처를 내리는 등 선수 관리·감독 단체는 체계적인 실행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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