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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게 119'…폭행·폭언에 멍드는 구급대원들

입력 2018-05-02 16:27

가해자 90%가 주취자…소방력 낭비에 육체적·정신적 피해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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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90%가 주취자…소방력 낭비에 육체적·정신적 피해 심각

'만만한 게 119'…폭행·폭언에 멍드는 구급대원들

#1. "다리에 쥐가 났어요. 좀 도와주세요."

강원도 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지난달 2일 낮 12시 40분께 원주시 명륜동에서의 일이었다.

현장으로 출동한 원주소방서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위해 신고자 조모(59)씨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었다.

술에 취해 증상을 또렷이 설명하지 못한 조씨는 "왜 자꾸 물어보느냐"며 욕설을 퍼붓더니 소지하고 있던 커터칼로 대원들을 위협했다.

조씨는 구급차 양쪽 후사경(사이드미러)과 와이퍼를 부수고, 라이터로 종이를 태워 차에 불을 붙이려 했다.

조씨는 결국 구급차가 아닌 경찰차를 타야 했다.

#2.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0시 23분께 춘천소방서 A 구급대원은 춘천시 남면에서 가슴 통증 환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술에 취한 신고자 유모(60)씨는 구급차 안에서 A 대원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를 잡아 뜯는 것도 부족했는지 심한 욕설과 폭언을 멈추지 않았다.

환자를 구하러 갔던 A 대원은 되레 얼굴에 타박상 등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각종 재난현장에 출동하는 구급대원이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 폭행이나 폭언에 시달려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보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주취자들의 허위신고와 구급대원 폭행은 소방력 낭비뿐만 아니라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대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최근 전북 익산에서 출동한 여성 구급대원이 취객에게 맞아 숨지면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강원도 소방본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구급대원 폭행 건수는 31건이다.

2015년 11건, 2016년 9건, 2017년 9건이 발생했고 올해도 2건이 발생하는 등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가해자 31명 중 28명(90%)이 음주 상태에서 구급대원을 폭행했다.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벌금 12건, 징역(집행유예) 10건, 재판 진행 중 3건, 무혐의 처분 등 기타 6건이다.

소방기본법에 따라 구급대원을 폭행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는 구조·구급활동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한다고 명시돼있다.

소방당국은 폭행방지를 위해 구급차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구급대원들에게 웨어러블 캠도 배부했으나 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가해자들은 스스로 119에 신고해놓고는 병원 이송을 거부하며 구급대원을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다.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도 큰 소리로 폭언과 폭행을 하고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애꿎은 대원들에게 화풀이한다.

비응급 상황에서 '아프다'며 119에 신고해 헛걸음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행법상 위급하지 않은 경우 신고단계에서 구급대를 출동시키지 않을 수 있으나 응급 여부 판단이 쉽지 않아 소방 입장에서는 대부분 구급대를 출동시킬 수밖에 없다.

강원소방 관계자는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아픈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대원들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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