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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섣달 그믐밤…그 쓸쓸함에 대하여 논하라'

입력 2018-12-31 21:28 수정 2018-12-3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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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섣달 그믐밤이 되면 쓸쓸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하라"
- 1616년 '증광회시'에서 광해군이 낸 책문(策問) 과거시험에서 임금이 출제하는 마지막 문제

1616년, 갓 마흔을 넘긴 광해군은 선비들에게 '책문' 하였습니다.

섣달 그믐이란…바로 이즈음 한해의 마지막 밤을 의미하지요.

묵은해와 이별하는, 까닭 없이 쓸쓸한 마음은 임금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까닭 없는 쓸쓸함이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대 고려' 전의 천년 된 유물은 인간이 품은 오랜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사찰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안에서 수습된 두루마리 천 조각.

무려 길이 10미터가 넘는 '발원문'(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에는 각종 신분을 망라한 천여 명의 이름과 함께 각자의 '소망'이 적혀있었습니다.

"두 살배기 어을진이 장수하기를 발원합니다"

자식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부모가 있었고…

"여자는 남자가 되게 하소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절한 소망도 발견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천명의 고려인들이 꿈꾸었던 희망들…

그들의 소망은 모두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여기…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는 이들이 써 내려간 2018년. 오늘의 발원문이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앵커브리핑의 페이스북에 달린 시청자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

"내 집 한 채 가질 수 있기를"

"갑질하지 못하도록 갑을 끌어내리는 을이 됩시다"

"살아남고 싶다. 안전모가 있었으면…"

"바위가 깨어지기까지 계란을 놓지 않을 겁니다"

소망은 각자 다르지만 서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천 년 전이나, 4백 년 전이나, 그리고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길고 긴 발원문 역시…

정치와 권력이 그리고 언론이 주목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밤의 쓸쓸함에 대하여 논하라'

임금의 질문에 대한 문인 이명한의 냉정한 답은 이러했습니다.

"까닭은… 묵은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그러나…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생각일 뿐…부디 정진하소서"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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