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신군부 핵심 황영시가 헬기 동원 지시…사실상 발포 명령"

입력 2017-08-31 07:3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저희 JTBC 취재진은 또, 이전의 5·18 진상 조사에서 왜 사건의 핵심을 밝혀내지 못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전의 검찰 수사 기록을 입수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록에는 신군부의 핵심 인사였던 황영시 육군 참모차장이 헬기 동원을 지시했고, 광주에 투입된 지휘관들은 "황 씨의 지시가 사실상 발포 명령이었다" 이렇게 진술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시 황영시 씨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전두환 보안사령관 뿐이었다고 군은 보고 있습니다.

김민관 기자입니다.

[기자]

1996년 검찰의 5.18 진상규명 수사 당시 기록입니다.

검찰은 80년 5월 전투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이던 김기석과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을 대질신문했습니다.

김 씨는 "전차와 무장헬기를 이용해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고 황영시 참모차장이 지시했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 지시는 곧 전차의 발포와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서에는 김 씨가 지시 내용을 기록해 놨다는 '메모지'의 존재도 언급돼있습니다.

대질 신문에 참여한 황영시는 김 씨의 주장을 거듭 부인하다 메모지를 확인한 후 사실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신군부는 줄곧 현장 판단에 따라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발포는 군 수뇌부가 지시했고 현장에서는 이를 따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황영시는 전두환 씨가 주동한 12·12 쿠데타에 동참한 신군부의 핵심 인물입니다.

전 씨보다 육사 선배이지만 12.12 이후 줄곧 전 씨의 지휘에 따라 움직였던 인물로 전두환 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감사원장까지 지냈습니다.

황영시가 내린 사실상의 발포명령은 당시 군의 실권자였던 전두환 씨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관련기사

"계엄군, 8대뿐이던 '코브라 헬기' 5대 광주 투입 요청" [단독] 북한 대비설?…80년 5월 육본 '전쟁징후 없다' 보고 '헬기 총격지시 문서' 다시 주목…'명령자 규명' 최대 과제 계엄군에 '실탄 130만발' 지급…사실상 전쟁 규모 무장 문서로 확인된 'TNT·대전차로켓' 광주 투입…대체 왜? 빌딩도 무너뜨릴 '충격적 무장'…실제 얼마나 사용됐나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