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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불확실성…재난 대비에서 복구까지

입력 2020-07-20 09:3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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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5)

최근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큰 그림을 공개했습니다. 크게 디지털과 그린을 두 축으로 하고, 안전망 강화라는 기틀은 다지는 거죠. 사실, 이들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도 최근에 있었습니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디지털 뉴딜, '한국형' 그린 뉴딜, '한국형' 안전망 강화와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요.

바로, 호우에 따른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긴 방글라데시의 경우입니다. 디지털과 그린, 이 둘의 시너지 효과로, 또 안전망의 강화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불확실성…재난 대비에서 복구까지

아시아에서 몬순이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생활양식을 결정지을 정도입니다. 몬순이라는 말 자체는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는 곧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환경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남아시아 지역은 몬순으로 인해 큰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곳곳에서 폭우와 그로인한 각종 피해를 입고 있죠. 피해 입은 사람만도 4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장 코앞에 닥쳐 피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예측'입니다.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느냐, 그래서 얼마나 신속하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피해 규모나 양상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이달 4일 "방글라데시 야무나강에서 심각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보가 나왔습니다. 지역주민 3분의 1이 이 홍수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었죠. 이같은 예보에 UN은 즉각 520만달러를 지원했습니다. 통상 정부나 국제기구 차원의 지원이 '사후 피해복구' 중심이었지만, 이번엔 '사전 지원' 형식이었던 겁니다.

지원엔 UN 세계식량계획(WFP), 식량농업기구(FAO), 인구기금(FPA) 등이 나섰습니다. 세계식량계획의 지원엔 독일과 우리나라가 참여했습니다. 손광균 WFP 공보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독일 외무부의 자금 지원을 통해 홍수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3만명이 지원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가구당 53달러씩 전달된 셈입니다. 지원을 받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인 또는 노인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홍수에 취약한 지역에서 발빠른 대처가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은 내민 것입니다. 타이밍이 생명인 만큼 즉각적인 도움이 가능하도록 이 금액은 모바일 뱅킹을 통해 지급됐고, 주민들은 홍수 3일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구호·지원 사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손 공보관은 "지원금은 식량 구매나 가족 구성원을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데에 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당장 홍수가 찾아온다고 예보가 나오더라도 선뜻 선제적으로 집을 떠나기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가축을 키우고, 이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간다면 더욱 힘들 수밖에 없죠. 적절한 타이밍에 주어진 긴급 지원금을 통해 주민들은 생필품을 살 수도, 키우는 가축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예보의 정확성과 적절한 타이밍이 핵심이라는 것이 손 공보관의 설명입니다. 지원금을 너무 일찍 지급할 경우 지원금이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너무 늦게 지급하면 준비할(이 돈을 사용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불확실성…재난 대비에서 복구까지 리처드 레이건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장 (사진: WFP)

이를 위해 WFP는 기상예측 기반 자금지원(FbF, Forecast-based Financing)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피해 현장을 관장하는 리처드 레이건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장은 FbF가 "WFP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난해 처음 도입한 혁신적인 구호 방안"이라며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특히 기상 예측과 홍수 자료를 기반으로, WFP는 주민들이 피해를 입기 전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지원은 그저 현금을 손에 쥐어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레이건 사무소장은 "지원을 받은 홍수 취약지역 주민들은 금전적인 보조뿐만 아니라 재난에 대응하는 훈련도 제공받았다"며 "재난이 그들의 일상을 덮치기 전에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역시 WFP뿐 아니라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FbF 프로그램은 홍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홍수, 가뭄, 사이클론(혹은 태풍)을 비롯해 이들이 합쳐진 복합적인 재난 상황에 모두 적용됩니다.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선 주로 가뭄이, 아시아 지역에선 주로 홍수나 사이클론 또는 이런 재난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곤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불확실성…재난 대비에서 복구까지 FbF프로그램이 적용되는 지역과 나라, 재난 상황은 매우 다양합니다. (자료: WFP)

기후변화가 심화할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집니다. 당장 아시아에선 몬순으로 인한 우기가 찾아오는 시기도, 그 우기가 지속하는 기간도 종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현재 100년에 한 번 겪을 '슈퍼 태풍' 같은 현상이 2050년이면 해마다 발생할 것"이라는 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과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이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피해는 국가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SOC(사회간접자본)나 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는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는 똑같은 강도의 재난에도 국가 시스템 자체가 휘청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피해 규모가 다르고, 여기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나라이기에 크게 와닿지 않는다면, 스케일을 바꿔서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자체별로 예산의 크고 작음, 인프라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똑같은 양의 비가 쏟아져도 하수도 설비가 잘 깔려있는 지역이, 똑같이 하수도 설비가 깔려있다 하더라도 평소 유지관리에 충분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지역이 피해를 적게 입겠죠. 재난이 닥치기 전, 대비에서 시작해 재난이 닥친 후, 복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역할, 한 나라 안에선 정부가 해야 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선 국제기구와 지역 내 선도 국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과 그린뉴딜, 안전망 강화로 구성된 한국판 뉴딜은 우리나라가 불확실성의 극대화에 잘 대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초의 목적과 계획대로 정책이 잘 시행됐을 때에 가능한 얘기지만요.

FbF프로그램이라는 멋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일조한 대한민국인 만큼 앞으로 국내 그린뉴딜 정책에서도 피해와 영향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디테일을, 노력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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