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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 "당분간 스케줄 다 비워"…움츠린 서초동

입력 2016-09-2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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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 "당분간 스케줄 다 비워"…움츠린 서초동


"김영란법에 맞춰서 메뉴를 만들었고 손님들을 상대로 홍보도 했지만 기존에 오시던 분들도 잘 안 와요. 저희집에 이거 먹으러 오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어요?"

평소 빼곡히 주차된 차들로 입구를 들어서기조차 힘들던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한정식 식당에 손님 대신 한숨이 들어찼다. 28일부터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손님들 발길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업소는 4인이상의 경우에만 판매하는 2만9000원짜리 '영란 정식' 세트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날 법조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던 서초동 고급 음식점들은 눈에 띄게 늘어난 빈자리들을 마주하며 울상을 지었다. 예약자가 대폭 감소한 것은 물론 기존 예약자들의 취소 사례도 속출했다.

최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에 문을 연 일식집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란법을 염두에 두고 2만8000원짜리 코스 요리를 판매하고 있지만, 오늘 예약자 명단에 누구의 이름도 적지 못했다.

일식집 사장 A씨는 "평소 7~8명씩 여러팀이 부서 회식 등을 이유로 예약했었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된 오늘 예약이 한 팀도 없다. 10월 예약도 평소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하는지 모임 자체를 안 하려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한 코스 요리 전문점 요리사 B씨도 "코스나 메뉴 가격을 정할 때 인건비나 실내 인테리어비, 임대료 등 유지비 등을 고려해서 정한다. 그런 것들에 대한 고려 없이 '뚝' 3만원으로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밥값이 중요한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 간의 양심 문제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판사와 검사들 사이에서도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된 주요 화두는 '밥자리'다. 개인적인 청탁 전화 등의 경우 적발하기 쉽지 않은 반면, 여러명이 공개된 장소에서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펴낸 교육자료 등을 각자의 책상에 비치하는 등 김영란법으로 처발받는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권익위 실무자 등을 강사로 초청해 관련 교육까지 이수한 상태다.

하지만 아예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예정됐던 약속들을 취소하고 추가 약속도 잡지 않는 등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나서는 법원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법조비리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이전부터 친분이 있더라도 검사나 변호사 등을 만나지 못하는 분위기가 완연했었는데, 김영란법으로 더더욱 조심하게 됐다"며 "몇몇 사람들은 '예전부터 친했던 친구도 못 만나겠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검찰 간부 역시 10월 일정표를 비워둔 상태다. 이미 예정했던 약속도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를 공유하며 대부분 취소한 상태다.

이 간부는 "주변에 변호사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그 친구들을 만나기 조심스러울 거 같다"면서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례들이 축적될 때까지는 최대한 조용하게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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