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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내각, '일왕사죄' 발언에 격한 반응…노림수는

입력 2019-02-1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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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일왕이 사죄하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문희상 국회의장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악화 일로를 걷던 한일관계가 더 심각하게 꼬이는 양상이다.

우파 성향이 강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지난 8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문 의장이 언급한 해당 발언이 알려진 뒤 연일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13일 속개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많은 국민이 놀라움과 분노(驚きや怒り)를 느꼈을 것"이라며 이 문제에 일본국민 전체를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도 "한국 측에 5번 정도 항의하고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다. 성의 있는 대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미국을 방문 중인 문 의장은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문 의장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딱 하나로, 진정 어린 사과"라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리 오래 끄느냐에 내 말의 본질이 있다"고 강조했다.

◇ '일리 있는' 문 의장 지적, 일본인 관점에선 '거친 표현'

문 의장 발언을 정리하면 일본 국권의 상징인 일왕이 불행한 과거사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면 문제가 모두 풀린다는 데 방점이 있다.

문 의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일왕의 사죄를 언급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부친은 일본인들이 그 연호를 따서 '쇼와 덴노(昭和 天皇)'라 부르는 히로히토(裕仁)다.

한반도 식민통치의 성숙기와 절정기가 그의 재위 기간(1926~1989)과 겹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위안부 문제 같은 수많은 불행한 역사들이 그의 재위 중에 벌어졌다.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라는 문 의장의 표현은 그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그런 배경을 따지지 않은 채 "무례하다"는 비외교적 언사까지 동원해 무조건 문 의장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아픈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는 한국인의 정서로는 일본 측의 이런 반응은 '적반하장'이라 할 만하다.

◇ 일본인에게 남은 '덴노'의 잔영과 아베 정권의 정치적 활용

한국에선 일왕으로 부르는 이가 일본에선 천황이라는 덴노다.

일왕은 무사정권인 바쿠후 집권기엔 명맥만 유지하다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을 거치면서 국정의 중심에 들어 앉았고, 신격화의 대상이 됐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같은 어두운 역사가 일왕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한국 같은 피해국 국민들에게 '덴노'라는 칭호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고통과 굴욕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됐다.

일제의 2차 대전 패전 후 가까스로 전범 재판을 피한 히로히토 일왕은 1946년 1월 1일 이른바 '인간 선언'을 통해 스스로 신격성을 부인했지만, '천황제' 자체는 살아남았다.

정치적 실권이 없는 존재가 됐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80년 가까이 '인간신'(神)으로 군림했던 일왕의 잔영은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덴노'가 인간선언을 한 지 오래됐지만 일본인의 정신에는 신성불가침성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내각이 문 의장의 발언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바로 '일왕의 잔영'을 정치적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일본) 천황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독립운동가에게 사죄하라. 통석의 염 같은 표현을 쓰려면 오지 말라"고 직설적 발언을 했지만, 당시 일본내각은 지금처럼 펄쩍뛰지는 않았다.

이런 연유로 아베 내각이 불리한 이슈들을 희석시키고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아베 내각은 오는 4월 통일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근로통계 부정 스캔들에 휘말려 연일 정기국회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또 애초 2020년 실현을 목표로 했던 자위대 명기 헌법 개정 작업이 야권의 강한 반대와 국민 여론의 외면으로 무한정 표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집권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지 못하면 2021년 9월까지 예정된 아베 총리 집권기간 내의 개헌은 물 건너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다수 일본인이 여전히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일왕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부각해 우익의 결집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일왕의 문제는 일본인에게 민감한 게 사실이지만 이번의 경우 아베 내각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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