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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원칙? 홍 감독이 아니라 우리가 깨고 있다"

입력 2014-05-1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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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원칙? 홍 감독이 아니라 우리가 깨고 있다"


"원칙은 홍명보 감독이 아니라 우리가 깨고 있다.", "의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지키는 거다."

안정환(38) MBC 해설위원의 말투는 현역 시절 플레이와 꼭 닮았다. 민감한 화두를 놓고도 거침 없이 의견을 말하는 모습은 대담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던 그를 떠올리게 했다.

2002 한·일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까지 3번 연속 월드컵에 출전해 3골을 터뜨렸던 그는 이제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4번째 월드컵에 도전한다. 안 위원은 월드컵 기간 동안 본지 해설위원으로 브라질 현지에서 생생하고 날카로운 칼럼을 보내올 계획이다. 그를 13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은 홍명보호의 첫 소집일이었다.

-홍 감독의 최종엔트리 선발을 놓고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많다.

"원칙은 홍 감독이 아니라 우리가 깨고 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월드컵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이를 놓고 왈가왈부 하는 건 좋지 않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진다. 대회가 다 끝난 뒤 결과가 안 좋을 때 비판해도 늦지 않다."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뽑히자 연기자 김보성의 유행어인 '으리(의리)'를 차용해 홍 감독이 '엔트으리'를 발표했다'는 패러디까지 나왔다.

"의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지키는 거다. 국민의 관심과 염원이 쏠린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이 인맥으로 선수를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열심히 뛰어 결과물을 내는 건 선수다. 감독은 어떤 선수와 궁합이 안 맞아도 팀에 도움이 되면 어떻게든 보듬어 안는다. 반면, 선수는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다. 이게 감독과 선수의 차이다."

-홍 감독이 3월 그리스와 평가전 때 전격 박주영 카드를 꺼내 성공했다.

"모험이 통했다. 원래 박주영을 후반에 기용하려했는데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 의견을 듣고 선발로 냈다더라. 이케다 코치는 나도 현역시절 요코하마, 부산에서 함께 했는데 누구보다 동양인의 몸상태를 잘 안다. 홍 감독은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코칭스태프와 회의, 데이터, 정신력 등을 두루 고려한다.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본다."

-베테랑이 없다는 우려가 있다.

"남아공월드컵 때 나는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입장이 아닌란걸 알았다. 후배들을 옆에서 도우려 했다. 하루는 휴식시간에 오락하고 있는 주영이 옆에 가서 슬그머니 함께 게임을 했다. 난 그 게임이 뭔지도 모르고 먼저 다가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주영이가 날 쳐다보면서 '형님도 이런 거 해요?'라고 놀라더라. 이번 월드컵에서는 주영이가 그 역할을 해야한다."

안 위원은 차갑고 도도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예의남' '깍듯남'으로 통한다. 그는 홍 감독을 비롯해 황선홍 포항 감독, 최용수 서울 감독, 신태용 전 성남 감독 등과 친분이 깊다. 하지만 이들을 말할 때 '형'이라 하지 않고 꼬박꼬박 '감독님' 호칭을 붙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평소 홍 감독과 가까운 것을 아는 사람들이 '친하니까 홍 감독을 옹호하는 것 아니냐'고 안 위원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고 묻자 그는 "홍 감독과 친해서 이런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홍 감독이 잘못 하면 내가 먼저 나서 뭐라 할 거다"고 단호히 답했다. 안 위원은 "나는 비판은 안 무섭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칭찬이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안 위원이 MBC TV에서 방송해설을 한지 약 3개월이 지났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료를 찾아 공부한다고 한다. 안 위원은 두꺼운 A4용지 뭉치를 손에 들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방송 해설을 해보니 어떤가.

"쉽지 않다. 해설 중에 '지난번'을 '접때'로 잘못 말한 적이 있다. 캐스터가 '무슨 접대요?'라고 되물어 '술접대요'라고 웃어 넘겼다. '앗싸리' '쇼부'같은 단어를 쓴 적도 있다. 그래서 난 생방송이 거의 없고 대부분 녹화인가.(웃음)."

-최근 런던에서 첼시와 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AT마드리드 3-1승)을 관전했는데.

"벨기에 공격수 아자르(첼시)의 봉쇄법을 찾을까해서 AT마드리드 수비를 집중적으로 봤다. 아자르를 기가 막히게 막았다. 맨투맨이 안 되니 서브로 2-3명이 압박했다. 한국도 그래야 한다. 문제는 아자르를 막느라 생기는 빈 자리에 협력수비가 될 수 있느냐다. 또 90분 내내 협력수비를 할 수 없으니 유기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경기에서 선방 쇼를 펼친 벨기에 골키퍼 쿠르투와(AT마드리드)는 어땠나.

"잘했지만 첼시 공격이 무뎌 진짜실력이라 평하기는 무리다. 쿠르투와는 키가 199㎝다. 한국은 슛을 땅볼로 깔아차야 한다. 그 선수 팔이 기니까 너무 구석보다는 발과 손으로도 못 막는 중간 코스로 슛을 날릴 필요도 있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레알 마드리드 4-0승)도 봤는데.

"레알 마드리드를 보니 안첼로티 감독이 왜 명장인지 알겠더라. 수비 조직력이 예술이었다. 8명이 딱딱 사다리꼴로 움직인다. 공격할 때도 7명이 4-3 대형을 유지한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사비 알론소는 최고였다. 20분 동안 그 선수만 봤다. 화면에는 안 잡혔지만 가운데서 모든 역할을 다 하더라. 사비 알론소 같은 선수가 한국에 있다면 8강 아닌 4강도 갈 수 있을 거다."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를 예상한다면.

"한국과 러시아 전은 어느 팀이 더 헌신적으로 뛰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알제리도 쉽지 않을 거다. FC메츠 시절 알제리 동료가 있었는데 정말 체격조건이 좋았다. 몸싸움과 세트피스를 조심해야한다. 알제리 수비는 종종 집중력이 떨어지니 손흥민, 이청용이 뒷공간을 노려야 한다. 벨기에의 악셀 비첼(제니트)이 살인태클로 살해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의 거친 플레이를 역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축구는 단순히 공만 차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황도 잘 활용해야 한다. 다 잘못되면 2무1패에 그칠 수도 있지만 러시아와 첫 경기만 잘 넘기면 1승2무, 2승1무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윤태석·박린 기자 sportic@joongang.co.kr
사진=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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