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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베트남서 만난 '민간인 학살' 유족들

입력 2020-04-20 21:45 수정 2020-04-21 20:10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21일 국가배상소송
대한민국이 '가해국 지위' 소송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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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21일 국가배상소송
대한민국이 '가해국 지위' 소송은 처음

[앵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 그리고 희생자는 9천 명이 넘는 걸로 베트남 정부는 추정합니다. 피해를 호소하는 베트남인들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국방부는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사과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내일(21일)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대리인으로 해서 우리 법원에 국가 배상 소송을 제기합니다. 대한민국이 '가해국의 지위'로 소송에 임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 2월, 베트남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먼저 이수진 기자입니다.

[기자]

총성이 울렸던 마을은 고요해졌습니다.

'바람 하나, 바람 둘'이란 뜻의 퐁니·퐁넛 마을, 이곳에 드리웠던 전쟁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덟 살 아이가 예순이 된 세월.

[응우옌티탄/당시 8세 : 여긴 이제 논이 됐어요. 예전에 여기는 끄 할아버지의 집이었어요.]

살아남은 가족들은 그때의 기억이 아직 자신들을 괴롭힌다 말합니다.

[응우옌티탄/당시 8세 : 한국군은 우리 엄마랑 마을 사람 10명을 이쪽에 몰아 놓고 죽였어요 우리 엄마가 여기 이 논밭에서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여기 누워 있었죠.]

1968년 설 연휴, 베트콩에 기습을 당하자 한국군 파병부대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군인이 공격당하면 근처 마을을 초토화시켰다고 이들은 기억합니다.

작전 수행 기간은 한 달 남짓, 이 사이 꽝남성 지역에서만 3백 명 넘는 베트남 민간인이 숨졌습니다.

전쟁의 순간엔 최소한의 인간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읍니다.

열아홉 언니는 신체 일부가 훼손된 채 나무 아래 웅덩이에서 발견됐습니다.

숨은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응우옌티호아/당시 13세 : 그렇게 다쳤는데도 언니는 엄마를 계속 찾았대요.]

바로 옆에서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걸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응우옌티탄/당시 11세 : 첫 번째 수류탄에 작은어머니가 바로 돌아가셨어요. 수류탄에서 노랗게 연기가 올라왔어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생존자들은 그 때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아이처럼 흐느낍니다.

[응우옌티탄/당시 8세 : 이렇게 너무 보고 싶잖아요. 머릿속에 늘 맴돌아요. 엄마를 잃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어요.]

[응우옌티호아/당시 13세 : 아빠는 밥을 하나도 안 먹고 술만 마셨어요.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응우옌티탄/당시 11세 : 여기 68년생은 이름도 없어요. 백지처럼 아무 죄 없는 갓난아이들을 왜 죽였어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에 대해 우회적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피해자들이 한국을 찾아와 진상조사를 청원하자, 우리 국방부는 '남아 있는 자료가 없어 사과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당사자에게 사과한다면 용서와 화해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합니다.

[응우옌티탄/당시 8세 : 사랑하는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죽여서 너무 원망했어요. 그러나 지금 정부나 참전군인이 나서서 사죄한다면 용서해 줄 거예요.]

(화면제공 : 한베평화재단 / 화면출처 : KTV '대한뉴스')
(영상디자인 : 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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