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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처럼 퍼진 '북한군 개입설', 언제 누가 시작했나

입력 2021-05-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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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 5·18 당시 외신 기자들이 찍은 계엄군에 희생된 시민들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왜곡할 수 없는 진실을 또 한 번 보게 됐습니다. 5월 광주에 대한 진실을 가리려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북한군 개입설이죠. 이 거짓의 뿌리를 찾아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이 얘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송우영 기자의 보도부터 보시겠습니다.

[기자]

북한군 개입설을 처음 주장한 건 탈북자 임천용 씨입니다.

임씨는 2006년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광주에 잠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8년 자신이 바로 광주에 왔던 북한군이라 주장하는 인물이 나옵니다.

김명국, 2013년 한 방송에 등장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입니다.

[김명국(가명)/5·18 당시 광주에 있던 북한군 : 우리나이 되는 사람들은 복무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

김씨의 증언은 2017년 책으로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때쯤 전두환 씨 회고록에도 북한군 개입설이 언급됩니다.

[전두환 회고록 (1권 406쪽) : 무기고 탈취는 군대에서도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중략)…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김명국의 증언을 토대로 한 논픽션 책 '보랏빛 호수' 줄거리입니다.

1980년 5월 19일 황해남도 장산곶 바다에서 두 척의 배를 타고 북한특수군 50명이 내려왔다.
20m길이의 남한 고기잡이배 모양, 유사시 자폭도 가능한 특수간첩선이다.
5월 21일 새벽 2시쯤 서해안에 상륙했는데, 해변 여기저기 돌들이 널려 있었다.
19살이었던 나는 특수군 대장 문제심의 호위병, 5시간 정도를 행군해 광주에 도착했다.
23일 오전 바리케이드가 놓인 광주의 큰 건물 안에 들어갔고, 우릴 기다리던 시민군을 만났다.
27일 임무를 마친 우리는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군 개입설은 당시 북한이 시민군을 지원했고, 계엄군에도 잠입해 서로 총을 쏘게 했단 내용입니다.

적화 통일을 위해 북한이 5·18을 기획하고 조종했단 겁니다.

지만원 씨는 "5·18이 북한 특수군들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가장 강력한 증거로 주장한 것이 바로 '김명국'의 존재였습니다.

최근엔 대학교수가 교단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가르쳐 큰 논란이 됐습니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도 북한군 개입설을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화면출처 : 유튜브·A방송사 (2013년 5월))
(영상디자인 : 조승우·조성혜·최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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