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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도 '주거난'…집값 치솟자 '전세' 권장도

입력 2020-11-29 19:58 수정 2020-11-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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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 집값이 치솟자 정부가 세 들어 살 것을 권장했고, 부당하게 수수료를 더 챙기는 '복덕방'도 사회 문제였습니다. 요즘 얘기가 아닙니다. 500년 전, 조선시대의 부동산 정책을 보여주는 사료 전시에 나타난 당시 모습입니다. 

강나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영화 '명당' (2017) : 여기 시세가 닷냥 엿 냥 하드만. 내가 시세 두 배 정도 쳐준다니까 그러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수도 '한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지도 자막 특히 관청과 궁궐, 상설시장인 시전이 다 모인 견평방은 한양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의 청진동과 공평동, 인사동 일대에 해당합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당시 이 지역 부동산 계약서를 보면 29칸짜리 기와집이 480냥 정도로 한양 다른 지역보다 3~4배 비쌉니다.

경제력을 갖춘 상인이 많이 살아 다른 곳 보다 기와집은 많았지만 대부분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에선, 양반이 백성의 집을 강제로 빼앗는 '여가탈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3년 유배를 보내거나 관직을 파면시키겠다 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전세도 이 무렵 크게 늘어납니다.

[김성룡/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정부에서 권장하는 거죠. 새로 집을 지을 수 없으니까. 세입이라는 형태도 한양에서 특히 나타나거든요.]

거래 사고를 막기 위해 지금의 공인중개사격인 '가쾌' 도 고종 때 공식 인정됐습니다.

[전시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 공평도시유적전사과 (~내년 5월 2일)]

복있는 집과 땅을 소개하겠다며 '복덕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했지만 매매가의 1%, 집세의 0.5% 씩 받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부당하게 수수료를 더 챙기거나 거래를 속이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비판 받기도 했습니다.

(화면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영상그래픽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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