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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할많하않"…청년은 시잌한 모양을 내고 싶다

입력 2016-08-16 21:25 수정 2016-08-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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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靑年은 시잌한 모양을 내고 싶다'

1932년작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여기서 시잌이란, 요새 표기로 '시크'.
그때도 외래어나 신조어는 유행이었던 모양입니다.

1937년에 출간된 < 모던 조선외래어사전 >에는 그 시절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만개 넘는 외래어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단어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신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당시 사회상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IMF 구제금융 시기엔 난데없는 생선시리즈가 유행했지요.

조기, 명태, 동태, 황태…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신세한탄은 비릿한 신조어로 등장했습니다.

그 이후 등장한 이태백, 88만원 세대. N포 세대 같은 신조어 역시 일자리와 생계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준 말들이었고요.

처해있는 입장이나 속해있는 세대 등에 따라서 서로 다른 신조어들로 소통하고 그 상대방의 신조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결국 세대나 계층 간의 단절이 일어나는… 그것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

어떤 말을 일컫는 것인지 짐작은 가능합니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와 계급사회 시대의 명칭을 덧붙인 절망의 단어.

사실 그래서 언론조차 그 유행어를 사용하길 꺼렸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어느새 그 말은 젊은이들의 삶 깊숙이 박혀 일상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워낙 많이 사용되니까 아예 외국의 언론에도 그렇게 인용이 되더라고 어제 비하인드 뉴스에서도 전해드렸습니다.

언어가 사회를 반영하고 결국 문화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 역시 그 언어를 제거한다고 해서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지요.

"靑年은 시잌한 모양을 내고 싶다."

1930년대. 신문물을 동경하고. 새로운 것에 목말랐던 그 시대의 청년들

그 시잌하고 싶었던 청년의 후예들인 80년 후의 청년들은 아마도 요즘 나온 신조어로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많하않" (할말은 많으나 하지 않겠다)

'시잌'하게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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