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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그레츠키, 왜 그는 위대한 아이스하키 선수인가

입력 2015-03-24 22:04 수정 2015-03-2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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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더 그레이트 원.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는 1994년 오늘, 개인통산 802호골을 넣어 북미아이스하키리그, NHL의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레츠키를 전설이라 부르는 건, 비단 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광춘 기자입니다.

[기자]

2피리어드 중반, LA 킹스의 역습기회에서 웨인 그레츠키, 동료와 패스를 주고받아 골로 마무리합니다.

[중계 캐스터 : 그레츠키가 해냈습니다. NHL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802골. 고디 호위의 최다골 기록을 깼습니다. 그레츠키는 자신의 우상을 넘어선 겁니다.

[백지선 감독/아이스하키 대표팀(1994년 LA킹스) : 믿을 수 없었어요. 그레츠키가 골을 넣자 게임이 멈췄어요. 구단주가 자동차를 선물로 줬어요. 행사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됐습니다.]

신기록 하나 세웠다고 경기까지 중단시키고 호들갑스럽게 벌인 축하행사. 미국은 왜 그토록 캐나다 출신인 그레츠키에 열광했을까.

1m90cm, 100kg이 넘는 거구들이 부딪히는 빙판, 힘과 힘이 겨루고 스피드와 스피드가 맞설 때, 183cm, 84kg의 비교적 작은 체구인 그레츠키는 전혀 다른 경기를 했습니다.

골을 넣으려면 골문 앞에 서 있는 게 상식인데, 그레츠키는 상대 골문 뒤에서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골만 넣는 게 아니라 동료의 골을 만들어주면서 아이스하키를 아름다운 게임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박용수 코치/아이스하키 대표팀(전 NHL 선수) : 그레츠키는 키가 작고 깡마른 선수들이 아이스하키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경기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그레츠키, 뛰어났지만 늘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작은 실패 속에서 그레츠키의 드라마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NHL선수의 출전이 허락되면서 그레츠키는 캐나다 국가대표로 나섰습니다.

체코와 4강전, 그레츠키는 체코 골리 하섹의 벽에 막힙니다.

연장 끝에 1대1 무승부. 그레츠키는 승부치기 멤버에도 들지 못했고, 캐나다는 동메달조차 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끝났다면 그레츠키는 여느 선수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4년 뒤 그레츠키는 캐나다 대표팀 단장을 맡아 조국에 금메달을 선물했습니다.

그레츠키는 당대 최고의 농구스타였던 마이클 조던과 자주 비교됐습니다.

누가 더 위대하냐는 논란입니다.

[박용수 코치/아이스하키 대표팀(전 NHL 선수) : 조던이 NBA의 그레츠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레츠키가 NHL의 조던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던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레츠키가 세운 60가지 신기록은 아이스하키에서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레츠키는 LA킹스에서 뛰면서 캘리포니아에 NHL 붐을 일으켰고, 아이스하키는 겨울스포츠의 한계를 넘어 북미 전역을 아울렀습니다.

[김정효 박사/체육철학 전공 : 그레츠키는 한마디로 프론티어입니다. 프론티어 정신이란 게 아메리카 신대륙의 역사가 이민과 정착의 역사였단 말이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도전이었습니다. 그걸 그레츠키가 갖고 있었다는 거죠.]

남과 다르게, 그리고 나보다는 남을 더 크게 만들었던 그레츠키. 1999년 4월. 뉴욕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링크에 섭니다.

미국 국가와 함께 캐나다 국가가 울려퍼졌고, 그레츠키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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