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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옥중서신'

입력 2018-03-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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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홀로 남겨진 열세 살의 어린 딸.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편지 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세상을 보았습니다.

"여성들이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감옥에 갇혀있다면
어떻게 그 민족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의 이름은 자와할랄 네루.

그가 3년간 감옥에서 보낸 196통의 편지는 < 세계사 편력 > 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고,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을 삼켰던 딸은 인도의 여성 정치가 인디라 간디로 성장했습니다.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흘러내리는 빗속에
콧물, 눈물을 묻어버리면 누가 알겠소"
 - 1986년 3월 김근태의 편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었던 젊은 김근태 역시 편지를 통해 가족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비 오는 날 홀로 이삿짐을 꾸려야 했던 아내와 만날 수 없는 아들과 딸…

가족을 향한 당부와 그리움은 편지글 안에 뚝뚝 묻어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비켜라
두 번째 줄에 서라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일 뿐 아니라 파괴적인 것이다…
네가 딸이기 때문에 무시되고
소홀히 여겨지는 경우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 1991년 5월 아들·딸에게 보낸 편지

아버지의 끊임없는 애정과 응원 탓이었을까…

고 김근태 의원이 세상과 작별하던 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딸의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단단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해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김근태 딸로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 딸 김병민 (손석희의 시선집중 2012년 1월 3일) 

세상으로부터 사람을 떼어놓는 감옥에서의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높고 단단한 벽 안의 시간은 자신의 심연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성찰의 장소가 되어주었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감옥 안에서 남긴 작품들은 그 깊이와 묵직함으로 세상에 전해집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옥중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는 중인 한때의 대통령이 보냈다는 미안함의 메시지.

그 사과는 국민들을 향한 것은 아니었고 미안함의 행간 속에는 복잡한 정치적 셈법마저 담겨있어서 사람들을 쓴웃음 짓게 했습니다.

마침 국정농단의 주인공인 또 다른 수인 또한 감옥 안에서 회고록을 작성 중이라고 하는데 감옥으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그들의 옥중편지는 자신들이 이미 망가뜨려 버린 세상에 더하여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그래서 어찌 보면 감옥 안에서 아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오늘 하루 종일 입길에 오르내린 그의 침묵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마저도 들게 하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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